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Sep 12. 2020

가을은 쓸쓸하게 내렸다

느리게 밝아지는

장마도 아닌데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피곤함에 묻힌 나는 잠에서 회복되지 못한다. 침대에 누워 시간이 흐르는 걸 넌지시 바라볼 뿐이다. 깨우려 하지 않아도 눈을 뜨는 아침 그리고 다소 이른 가을비, 계절은 거짓말처럼 쓸쓸하게 내린다. 나는 할 일이 많은 사람이나,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한결같이 게으름을 피운다. 침대 끝에서, 이불 안쪽에서 어두운 밤을 생각한다.


아침은 가끔 오늘처럼 느리게 밝아진다. 눈을 뜰 때, 가끔 아침은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세상은 나처럼 슬픔을 좋아하나 보다. 몇 달 전엔 기다랗고 폭이 좁은 고무나무로 만든 책상 하나를 창가 앞에 놓았다. 그냥 세상 돌아가는 것을 구경하고 싶어 벌인 욕심이었으나, 앉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으므로 나도 책상도 같이 방치되었다. 지나가다, 문득 책상 생각이 나면, 고개를 돌려 책상에 앉은 나를 상상하곤 했다. 생각과 행동, 둘 사이엔 늘 심각한 간극이 존재한다. 늘 생각은 저만치 앞서가고 행동은 부산스럽게 따라가는 모양, 책상은 생각이고 나는 행동이 느린 아이인 셈이다. 늘 뒤에서 서성이며 후회하는 일에 빠진.


비가 차분하게 내리는 오전, 피로를 물리치고 창가 앞 책상에 앉은 나는 비로소 세상을 눈으로 본다. 눈을 뜨고도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이다. 눈을 떠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경하는 나는 이상한 인간이다. 고요한 시간,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시간에서 책상 위에 오직 노트북 하나, 글자를 입력할 수 있는 원고 작성 툴을 화면 가득 채워놓고 글을 쓴다. 그리고 쓰면서도 나는 어쩔 수 없는 의식에 사로잡힌다. 대체 왜, 쓰는 거냐고. 무엇을 찾겠다고 쓰는 거냐고. 이런 질문에 멱살을 잡히고 빌어먹을 순간으로 잡혀가는 것이다.


시간은 지금도 엄정하게 흐른다. 나는 그래서 쓴다.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대신 글을 쓰며 찰나의 시간이라도 보람된 것으로 남겨두어야 하지 않겠나. 시간은 그래서 나에게 모든 흔적이 된다. 시간은 내가 남긴 상흔, 폐허, 유적쯤이라고 해두자. 아니 어쩌면 먼지에 불과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먼지처럼 공중에서 부유하다, 가을비에 씻겨나가 말끔한 존재로 변신하는 것처럼, 나는 시간 속에서 존재하지만 증명하기 곤란한 가설 같은 것이 될 테니까. 따라서 나는 먼지와 하등 다를 바 없는 존재다. 그런데 왜 먼지처럼 가볍지 못할까.


시간은 사회적인 약속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당신과 나와의 약속, 세상과 나와의 약속 나아가 신과 나와의 약속이 아닌가. 그러니 나는 일정한 규범, 체계 속에서 시간에게 안전한 권리를 보장받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아무도 손을 먼저 내민 적은 없다. 오늘 아침 가을비가 슬며시 내 손을 잡은 것처럼 어느 순간 다만 느껴지는 것이다. 시간이란 묻어지는 것.



창가 앞 책상에 앉은 지금 이 순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면서도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무신경하게 흘린다. 비 오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고 가끔 검은색 또는 은색의 자동차가 날렵하게 도로를 누빈다. 바퀴가 도로 위를 스치고 지나가면 엔진 소리가 서서히 뒤를 따른다. 동그란 바퀴가 굴러가는 걸 보니 늘 서두르는 내 생각과 비슷하게 생겼다. 엔진은 따라잡지 못하는 내 행동 같은 것이 어닌가, 나는 이렇듯 현재의 나를 세상에 자꾸만 쓸데없이 편입시키려 한다. 그러니까 나는 세상을 또 다른 나로 보려 한다는 이야기다. 그런 생각으로 본다면, 세상은 나이기도 하고, 나는 세상이기도 하니, 모든 존재가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겠다.


계절은 시간을 앞서가는 걸까? 뒤따라가는 걸까. 나는 그 무엇도 아님이 계절과 시간 사이에서 증명된다. 아무 의미도 없으니 그저 노트북을 펼쳐놓고 떠돌아다니는 생각의 조각 따위를 늘어놓는 게 아닐까. 그러니 글쓰기는 결국 자기만족이다. 오직 나만을 위한, 나를 위로하기 위한, 완벽하게 소진해버린 나의 불씨를 다시 댕기려는 행위가 아닌가. 그러니 피곤해도 이불 속에 누워서 빈둥거리고 싶어도 글은 스스로 쓰여야 한다. 다만 그 쓰임새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나만을 위한 글인데, 세상 속에서 어떻게 다듬어지고 확장할지 예측할 수 있겠나. 그러니 복잡한 생각, 의심 따위는 거둬들이고 그냥 쓰자. 이유나 목적에 자꾸만 다치지 말고.


이전 04화 당신은 산들바람처럼 불어오네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