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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Sep 19. 2020

당신은 산들바람처럼 불어오네요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마음속에 틈이 생깁니다. 갈라진 틈으로 상처가 울다, 발작을 일으킵니다. 도움을 구하려고 당신에게 다가서다가도 나는 주저앉습니다. 스스로 곪는 길을 선택합니다. 오늘도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당신이니까. 당신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나는 아픈 길을 가렵니다.


당신은 먼 곳에서 산들바람처럼 찾아와 살갗 위를 스쳐가네요. 야속하게 비는 아침부터 한바탕이지만 내 기억은 여전히 소강상태입니다. 오늘도 내 두근거림은 속절없이 증발해버려야만 하는 건가요. 흐린 날이 끝나면 밝은 날이 찾아올 거라 믿지만, 비 오는 거리를 하염없이 걸어도 당신은 보이지 않아요. 맑은 눈물방울만 구름 위를 걸을 뿐이죠. 햇살은 어디로 숨었을까요. 내 가슴에는 불꽃이 가끔 청춘입니다만, 이제 슬슬 재로 변하고 있죠. 어쩌면 다시 이슬로 환생할지도 모르겠어요. 그게 흐린 날을 대하는 나만의 방식일까요. 아니면 과거를 중얼거리는 당신만의 방식일까요.


우린 이방인 같아요. 밝음도 어둠도 아닌, 그 무엇도 아닌 경계 너머에서 살아요. 십 년 전쯤, 아니 백 년 전쯤의 세계에 속해 있을 지도요. 오늘 밤에도 같은 꿈을 꾼다면, 그 꿈의 세계에서는 국경을 꼭 넘어서 당신의 문을 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어도 될까요. 꾹꾹 눌러놨던 아픔도 희망 속에서는 설렘으로 잉태될 수 있을까요. 그런 걸 기적이라고 부르던데 말이죠. 수백, 수천 년을 견뎠지만 우린 낡은 운명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어요. 그러니 하루는 늘 어둡게 빛나기만 하는 거예요. 어둠 속에서만 살아온 나는 밝음을 동경하기만 합니다. 빛이 보드랍게 아침을 감싸는 순간, 그 설렘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해한다는 걸 뭘 뜻하는 거죠? 안다는 건가요? 본다는 건가요. 보이는 건 전부 실존하나요. 상상 속에서나 살아있는 매머드 같은 존재는 아닌가요.


촉촉한 땅도 언젠가 잠들겠죠. 세상이 잠자리에 누우면 나에겐 한 평의 너비 밖에 남아있지 않을 거예요. 난 그 원리를 이해해요. 난 이 지구에서 겨우 한 평의 세를 내고 쭉 살았어요. 어쩌면 당신의 손바닥이 제가 아는 세상의 전부일지도 몰라요. 난 늘 배웅을 하고 집에서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걸 반복하지만 여전히 난 당신의 손바닥 위에 있어요.



안개는 눈앞에서 여전히 활개를 칠 테죠. 오래 살 것처럼 길을 가로막아 서겠죠. 오늘 아침에도 파란 기운이 가득했지만요. 앞이 보일 거라 믿음을 버리지 않고 방향을 개척했어요. 문제는 보이는 건 모두 안갯속으로 사라지고 난 아득함 속에서 주변을 계속 돌기만 하는 거예요. 얼마나 멀리 떨어지고 걸었을까요. 이 길은 여전히 붉은색으로 물들어가는데 난 아직도 잿빛 속에 멈춰있으니, 나는 떠나간다 해도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는 거예요.


아픔도 씨앗처럼 제 몸을 틔우겠죠. 봄은 더러운 몸을 씻기고 그을린 지난날에게 새 안부를 묻습니다. 아픈가요? 화상이라도 입었나요? 아파서 당신은 다른 얼굴로 위장하고 어떤 날은 나비로 변신하여 이 꽃 저 꽃 날아다닌 건 아닌가요? 가끔은 흔들렸을 거예요. 이해해요. 그래서 비 오는 날이면 야생화를 찾아 떠났을지도 몰라요. 그건 한낮에 꾸는 낮잠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어둠은 깊고 길어요. 칼날 같은 바람도 여전히 불죠, 안개는요 흩어질 생각은 없어요. 이데아 속에서 우리도 언젠가 숨을 거둘 테죠. 그런데요, 당장 어두울지라도 삶은, 내일 그리고 다른 내일을 기대하며 밝게 사는 거래요. 그게 철학자들이 종교 대신 믿는 가치래요. 물론, 오늘도 내일도 비통한 노래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죠. 노래란 건, 그물을 어깨에 짊어지고 바다로 향하던 오래된 노인의 그물질 같은 거죠. 노인의 바다는 잔잔해질까요? 바다는 검푸른 빛만 띌까요? 아침은 햇살의 가르침을 받아 언제나 푸르게 빛날 테지만요. 그러니 슬픔은 창밖의 이슬처럼 혼자 남겨 두지 말아요. 슬픔은 지금도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어요. 우리는 어쩌면 고통을 누르며 희망 상실증에 걸려 있을 지도 몰라요. 내일은 반드시 오고 상처도 곧 아물 테지만요.


언젠가, 닿지 않는 미래가 찾아오면, 바다가 보이는 해변에 작은 집을 지을 겁니다. 날개가 꺾인 사람들이 찾는 집이라고 명패를 걸고, 새벽 달빛에 의지하며 커피를 내리는 거죠. 그러면 집 잃은 나그네들이 가끔 찾아올 거예요. 아니 희망 상실증에 걸린 영혼들이 지나다 들르겠죠. 바다에서 도착한 온기가 잠을 자다가도 반기며 달려올 테고요. 당신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네요. 절대 변하지 않는 건 없다고 하는데, 사랑은 그렇지 않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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