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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곤의 미래대화 May 07. 2023

시로 읽는 역지사지

10년도 넘은 일인데 지금도 눈에 선하다. 같이 저녁을 먹던 일본인 지인이 자신의 애송시 하나를 들려주었다. <참새의 엄마>라는 제목의 짧은 시인데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다.     


어린아이가 새끼참새를 붙잡았다 / 아이의 엄마가 그걸 보고 웃고 있었다 / 참새의 엄마도 그걸 보고 있었다 / 지붕에서 울음소리 참으며 보고 있었다/     


윤동주를 닮은 일본의 여성시인 가네코 미스즈가 쓴 시다. 새끼참새를 잡아서 아이와 엄마는 즐겁지만, 그걸 지켜보는 엄마참새는 애가 타는 모습을 그렸다. 강자와 약자, 강자의 부모와 약자의 부모 4명의 모습과 심리상태가 몇 줄 안되는 시 속에 생생하게 담겨있다.     


간혹 이 시를 혼자서 읊조려보곤 한다. 그러면 승자와 패자, 가해자와 피해자,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처럼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떠오른다. 배려, 역지사지, 균형, 조화, 공동체 같은 단어들도 생각나게 한다. 대립 상태에 있는 모두를 함께 생각하도록 만드는 참 좋은 시다.     


필자는 지난 30여년간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정책을 연구하는 일을 해왔다. 처음 한동안은 그냥 좋은 정책을 만들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시간이 한참 지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어떤 결정을 하든 어떤 정책을 만들든 그 결정과 정책으로 혜택을 보는 계층과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함께 생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누구는 찬성하고 다른 누구는 반대하는 갈등 상황이 거의 항상 벌어진다.     


구체적인 예는 수도 없이 많다. 농산물 가격이나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이익을 보는 사람들도 생기지만 피해를 보는 사람이 더 많을 수 있다.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검토해야 한다. 규제를 철폐하면 신산업을 촉진할 수도 있지만 기존산업이 무너질 수 있는 리스크도 고려해야 한다. 탄소배출을 줄여 기후위기를 극복해야 하지만 화석연료 관련산업에 미치는 부정적 충격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사용자도 노조도, 고령자도 청년도, 여도 야도, 신산업 종사자도 전통산업 종사자도, 자신의 입장만을 주장하면 안된다. 자신을 주장하되 상대의 입장도 헤아려서 모두에게 좋은 제3의 길을 찾는 방법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그래서 대화와 존중, 타협과 양보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부족한 부분이다.     


특히, 사회 전체에 영향을 주는 의사결정을 할 때는 더 조심스럽고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전체적으로는 기존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더라도, 새로운 의사결정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생길 수 있다. 그럴 경우, 피해를 보는 계층에게도 새로 생기는 혜택의 일부를 공유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오해와 불신, 갈등과 대립을 넘어설 수 있다. 그것이 인공지능, 불평등, 고령화, 기후위기와 같은 근본적인 사회변화 속에서 모두가 공존하면서 지속성장하는 좋은 공동체, 성숙사회를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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