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ㅇㅇ님 소주 잘 안 드시잖아요?"
퇴근 후 오랜만에 갖게 된 술자리에서 술을 주문하는 순간에 등장한 질문이었다. 함께 술자리를 종종 갖긴 했지만 대부분 술은 소주가 아닌 맥주를 시켜 먹고 있었으니 술을 고르는 중에 나온 소주도 괜찮다는 말에 너무도 자연스레 튀어나온 반문이었다. 잠깐의 시간, 고민의 시간이 흐른 후 우리는 소주를 주문했다.
하지만 그 결정에 대한 후회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첫 잔에 술이 채워지고 잔을 마주친 후 담긴 술을 반쯤 들이키고 내려놓은 다음 그리 새롭지도 않은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소주를 안 좋아하고 있었구나"
소주를 안 좋아했다는 사실은 먹다 보니 더욱더 짙어져만 갔다. 과거에 아주 가끔 술이 달게 느껴진 적도 있었으나 그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고 대부분의 소주에 대한 느낌은 쓴맛으로 남아있었다. 그런 와중에 한동안 잊고 살았던 그 맛이 입안 가득 느껴지니 당연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취향은 그랬다. 한동안 잊고 살았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이 되면 자연스레 그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스스로의 모습이 아닌 듯하여 돌아볼 수도 있겠지만 그 모습은 변하지 않은 본인의 모습이 맞았고 그런 현실 속에서 그렇게 나는 나를 한번 더 알아갔다.
"순대 1인분 주세요"
"내장도 섞어드릴까요?"
"네 그렇게 해주세요"
금요일 저녁 퇴근길에 한 주 동안 고생한 자신에게 주는 조그만 선물로 순대를 주문하게 되었다. 물론 순대를 제외하고 다른 부산물들을 아예 먹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 내장을 섞어도 되냐는 질문에 그냥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한 한 접시의 순대를 받아 들고 한입, 두입 먹어가는 중에 문득 간의 퍽퍽함과 허파의 식감이 뭔가 기존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기존에 늘 아무 생각 없이 먹어왔던 순대의 취향은 그날을 기점으로 간과 허파보다는 순수한 순대 쪽으로 한 발자국 더 기울어졌다.
'다음엔 순대만 주시고, 간과 허파는 (가능하면) 한 개만 넣어주세요 라고 해야지'
하나, 둘 사라져 가는 순대로 배가 불러갈 때쯤 다음번 주문할 때를 생각하며 이런 생각들로 머릿속 또한 채워져 갔다. 늘 먹어왔던 메뉴 속에서도 새로운 취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였다.
"너 답지 않아"
"나 다운 게 뭔데?"
흔하디 흔해서 이제는 도대체 이런 대사는 누가 처음 시작했을지 궁금할 지경이 되어버린 드라마 속에 나오는 대사들이 있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나에 대해 안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취미와 특기를 항상 적어야 했고, 장래희망란에 무언가 적어야 한다는 것을 강요받고 자라왔다. 그리고 생활 기록부에는 항상 외부에서 바라보는 개인에 대한 정의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런 현실들은 중, 고등학교를 지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받게 되는 인사평가와 사회생활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오고 있다. 원치 않은 일을 했어야 할 수도 있고, 스스로가 생각하는 모습대로 평가받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 삶 가운데서도 개인에 대한 정의는 꾸준하게 변화하고 또 새롭게 정의되고 있었다. 언젠가 또 변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지만 지금의 나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신에 대한 물음표에 마침표를 스스로 찍어 가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