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상
"주말에 뭐해요?"
"아무것도 안 해요"
보통 어색한 사람 둘이 만나서 호구조사가 끝나고 나면 으레 묻는 질문과 대답이었다. 주말에 뭐하냐는 질문에 사실 특별히 할 말이 없긴 했다. 그냥 집안일하느라 바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마치 집안일을 하루 종일 하는 사람처럼 느낄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렇다고 집안일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도 아닌데 집안일하고 있다고 말하기 머쓱하기도 했다.
주말 아침에는 낮잠도 잘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주말이라고 특별히 늦잠을 자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냥 아침 일찍 눈을 떠서 이불 밖으로 몸을 끌어내야 한다는 갈등 속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 그냥 눈을 멀뚱멀뚱 뜬 채로 천장을 보며 누워있거나 핸드폰을 보며 누워 있어도 된다는 점은 그야말로 주말 아침을 누리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과정을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는 뭔가 너무 없어 보인다. 주말의 시간이 흘러가는 게 너무 아까워서 일부러 일찍 일어나기도 하고 그렇지만 일어나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겠는가.
침대에 누워 충분히 아침을 즐기고 나면 슬슬 몸을 일으켜 굶주린 뱃속에 뭔가를 넣어보려고 고민한다. 전날 장을 봐왔다면 재료들을 꺼내 들어 뭔가를 만들려고 고민하겠지만 특별한 메뉴가 없다면 주로 면을 삶아서 먹는다. 간단하게 라면이나 파스타를 삶아서 요리 아닌 요리를 만들어서 아침도 아닌 것이 점심도 아닌 것을 먹으며 티비를 켠다. 잘 챙겨보지 않는 티비 프로그램들을 뒤로 한채 몇 가지 티비를 켜 놓고 그저 적막한 집안에 나 대신 누구라도 떠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밥 먹는 시간을 그렇게 함께 보내곤 한다. 물론 그중에서도 밥을 먹을 때면 다른 사람들이 먹는 걸 같이 보고 있는 걸 좋아하니 맛있는 걸 대신 먹는 그들을 지켜보는 걸 즐긴다.
밤늦게 들어오는 날들이 며칠이 쌓이고 나면 그 시간이 쌓인 만큼 빨랫감도 함께 쌓여 갔다. 밤에 세탁기를 돌릴 수는 없으니 날도 맑고 화창한 주말은 빨래를 돌리기 최적의 조건이다. 쌓인 빨래들을 잔뜩 긁어모아 세탁기에 집에 넣고 세재를 넣고 운전 버튼을 누른다.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는 정말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고마움과 함께 쌓인 먼지 그리고 묶힌 시간들을 씻어내고는 한다. 그중에서도 세탁이 끝난 빨래를 탈탈 털어 건조대에 너는 순간, 이 짧은 순간을 위해 그동안의 시간을 인고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널브러진 빨랫감을 치우고 나니 이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리저리 흩어진 장애물을 피해 가듯 살아왔던 지난날을 반성하고 잔뜩 구겨진 종잇장을 눌러 펴듯이 눈에 보이는 것들을 모두 치워나간다. 넓어진 공간만큼 청소기를 밀어낼 공간도 넓어지는 순간이고 영토 확장의 희열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며 미안했던 마음도, 밤늦게 들어와서는 피곤함과 귀찮음으로 미뤄왔던 마음도 이제는 다 잊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청소기를 이리저리 밀어가며 삶의 흔적을 지워나가고 거기에 또 걸레질을 하며 살아왔던 공간을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지만 나름대로 바쁜 일들로 가득한 주말의 시간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언젠가 누군가는 다시 질문할 것이다
”주말에 뭐해요?”
“아무것도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