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장마시즌이다.
"그동안 남부지방에 머물던 장마전선이 북상하면서, 중부지방 곳곳에 강한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우산을 들고 장대비가 내리는 거리에 서 있던 리포터는 장마 소식을 전했다.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TV나 라디오를 통해 접할 수 있는 일상이 되었다. 이제는 우기가 되어버린 건 아닌지 싶을 만큼 매일 같이 구름 낀 하늘은 추적추적 비를 쏟아붓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문득 어릴 적 생각이 떠 올랐다. 어디까지 맞아봤던가?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다'는 흔한 농담 같은 어딘가를 정말 얻어맞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얼마나 맞아봤던가 하는 물음이었다. 어릴 적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비를 맞고 싶었다. 물론 무슨 생각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 그날의 생각과 상황은 전혀 생각나진 않지만 그냥 그렇게 비를 맞고 싶다는 생각만을 품은 채 옥상으로 무작정 올라갔다.
억수로 쏟아지는 빗속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간 순간 내리는 비를 흠뻑 맞을 수 있었다.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지만 옷은 모두 갖춰 입고 있었고 속옷까지 흠뻑 젖고도 신나게 바닥을 뛰며 물장구를 치던 시절이 있었다. 온몸으로 비를 맞던 시절, 어디까지 비를 맞을 수 있을까 하는 이상한 상상과 호기심은 그렇게 현실이 되고 있었다. 물론 맘껏 비를 맞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 후에 날아올 등짝 스매싱은 그 어느 안중에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지금은 조금씩 내리는 빗물 한 방울에도 우산을 꺼내 들고 철저히 내리는 비를 외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현관문을 지나 버스 정류장으로,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역으로, 지하철역에서 또 회사까지. 비가 내린다고 하더라도 저런 동선을 따져보면 실제로 우산을 쓰고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설령 우산이 없는데 비가 내린다고 하더라도 주변에 잔뜩 있는 편의점이나 상점에서 우산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삶 속에 우산 없이 비를 맞는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이마저도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 자동차로 이동을 한다면 바깥 날씨와는 더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어릴 적 내리는 비를 흠뻑 맞고 싶었던 생각은 어디에서 왔을까. 누구나 우산을 쓰고 다니는, 아니 으레 그래야만 하는 세상 속에서 지금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흠뻑 빠져들고만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을 지금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앞, 뒤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좋아하던 사람이 있었고, 방학 한 달을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 빠져 들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기던 취미가 있었고, 밤을 새 가며 자료를 찾고 정리하며 일을 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세월이 흘러서 아직까지 어린 시절 그날처럼 온몸으로 비를 맞는 일은 겪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 시기,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을 바라볼 때면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다시 한번 온몸으로 비를 맞아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