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땐 순하고 착했는데, 이젠 땡삐같다.”
입바른 소리를 잘하는 나에게 엄마는 종종 눈을 흘기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난 정말 착했단다. 착했다는 게 별거겠나? 부모님께서 시키는 대로 말을 잘 들었던게지.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린아이에게 착하다고 말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특히 칭찬과 사랑에 목마른 아이에게는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너 정말 착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무심결에 그 말이 튀어나왔을 때는 즉시 정정한다. “그런 행동을 하다니 정말 고맙구나!”라고.
착하다는 말에 조심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 착하다는 칭찬이 어린 나를 아주 교묘하게 조종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우리 오빠는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으면 며칠을 떼를 써서라도 얻어내곤 했다. 반면 나는 갖고 싶은 걸 얻어내지 못했다. 갖고 싶은걸 말하는 일도 드물었고, 용기를 짜내 한 번 말해서 얻지 못하면 이내 포기했다. 어린 나는 바비인형이 너무나 갖고 싶었고, 피아노도 갖고 싶었지만 엄마 아빠에게 차마 조르지 못했고 결국 이 둘은 어른이 되어 내 돈 주고 사기 전까지는 내 것이 되지 못했다.
엄마는 오빠가 철이 없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철이 없는 오빠는 원하는 것을 얻으며 자랐고, 착한 나는 원하는 것을 삭히며 자랐다.
어른이 되어 오빠와 대화를 나누다 놀란 적이 있다. 우리는 분명 같은 집에서 자랐는데 오빠의 기억에 어린 시절 우리 집은 부자였고 내 기억에 우리 집은 가난했다.
실제로 우리 집은 (재산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현금이 부족하게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엄마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일을 하셨으니, 생활이 쪼들리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러나 사업을 하는 아빠의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고, 빚을 지기도 했다.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대화를 들은 뒤에 난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착각을 했고, 그래서 나라도 엄마 아빠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나 보다. 그래서 착한 아이가 되었을 게다.
조금 큰 뒤에 보니 우리 집은 그냥 보통의 가정이었다. 먹고 싶은 것 먹고 입고 싶은 것 입을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래서 좀 억울하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어려웠던 거 아님 나도 좀 챙겨주지! 괜히 혼자 오버해서, 엄마 아빠 힘들까 봐 말도 못한 내 자신이 답답하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엄마들이 신경 좀 쓴다 하는 아이들이 하는 것들을 우리 오빤 대부분 그냥 얻었다. 차분하게 앉아 집중시켜준다는 서예학원에도 다녔고, 당시 핫했던 윤선생영어도 했다. 엄마는 자모회에 들어 오빠 친구 엄마들과도 교류했다. 난, 2학년 때 엄마의 권유로 그리도 좋아했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뒀다.
어떤 속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첫째이고 아들인 오빠에게 더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었겠지 짐작만 할 뿐이다.
“엄마께 이런 마음을 전달해 본 적이 있나요? 한 번 말씀드려보세요. 그때 좀 속상했었다고......”;
대학교에서 상담심리 과목의 과제로 받았던 상담을 몇 회기 받고 났을 때, 상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주말에 집에 갔을 때 슬그머니 말을 꺼냈다.
“엄마, 나 어릴 때 오빠만 신경 많이 써줘서 되게 속상했어. 오빤 첫째라서 동생은 막내니까 신경 쓰면서 난 그 둘 사이에서 좀 차별당한 거 같아.”
“내가 언제 차별했다 그러니?”
엄마는 차별이란 단어에 즉시 강하게 반응하셨다. 그래서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내가 그냥 그리 느꼈다는 건데, 엄마는 그 시절 얘기를 하면 아직 힘겨운가 보다 생각했다.
“엄만 맨날, 나만 미워해요!”
우리 딸이 자주 하는 말이다. 난 정말 공평하게 대하는 것 같은데, 동생만 예뻐한다며 섭섭해한다. 다섯 살의 나이차로 인해 동생을 챙겨주는 일이 많으니 샘이 나는 것이겠지. 자녀에게 이 말을 듣다 보니, 차별이란 단어를 듣던 엄마의 마음이 좀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섭섭함을 느낀다고 말하면 비난하지 않고 들어주려 노력한다. 아이에게서 어린 시절 내 모습을 본다. 그 시절 내가 엄마에게 듣고 싶던 얘기들을 해 주려 한다. 아이는 나와 같은 상처를 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부모님과 20년을 함께 살고 또 20년을 따로 살았다. 20년을 떨어져 살며 비로소 좀 더 지유롭다. 착한 딸이던 시절보다 땡삐가 된 지금이 더 편안하다. 좋은 건 좋다 싫으면 싫다 말 할수 있어 좋다.
문득 궁금하다. 엄마에게 난 어떤 딸일까? 다음번에 만나면 여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