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매체에서 ‘공소시효’와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범죄행위 이후 일정 기간 공소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처벌이 면제되는 제도’를 의미하는 법률 용어입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단어의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하지만 ‘법’에 대해 관심이 커질수록 이런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일례로 아래 민법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 조항 중 일부를 살펴보겠습니다.
[가등기담보 등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차용물(借用物)의 반환에 관하여 차주(借主)가 차용물을 갈음하여 다른 재산권을 이전할 것을 예약할 때 그 재산의 예약 당시 가액(價額)이 차용액(借用額)과 이에 붙인 이자를 합산한 액수를 초과하는 경우에 이에 따른 담보계약(擔保契約)과 그 담보의 목적으로 마친 가등기(假登記) 또는 소유권이전등기(所有權移轉登記)의 효력을 정함을 목적으로 한다.
앞의 ‘공소시효’와 같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인가요? 이것은 ‘타인에게 물건이나 부동산 등을 빌렸을 때, 빌린 이가 갚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특정한 재산을 담보로 삼아 임시등기나 소유권 이전등기를 합니다. 이는 가등기담보 또는 소유권이전등기의 효력을 가집니다. 아울러 담보의 성립 조건은 빌린 재화의 가치와 이자를 합친 금액을 초과해야 합니다.’로 풀어쓸 수 있습니다.
원문의 경우, 차용물, 가액, 차주, 담보계약 등 생소한 용어가 등장하며, 이에 더해 전체 내용이 긴 복문으로 작성되어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생활에서 누군가에게 재화를 빌리거나 갚을 때 원칙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입니다. 미리 알고 있거나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참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당사자는 법률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들은 법률의 난해한 표현들에 익숙하며, 다양한 판례를 바탕으로 문제해결에 필요한 절차와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과정에서 법률해석과 문제해결 절차만을 학습했으니 어려운 표현과 과정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법률의 난해함 자체를 권위의 상징으로 여깁니다.
국민 모두를 위해 만들어진 법률에 전문가의 해석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법의 추상성입니다. 추상성은 마치 한글 창제 전, 글을 모르는 이들이 한자를 바라보는 거리감 같은 것입니다. 국가나 지방관청에서 교지 등을 내릴 때, 일반 백성은 한자를 모르기에 글깨나 한다는 양반이나 서생을 찾아서 굽신거리며 내용을 여쭈어보아야 했습니다. 지금이라고 다를 것도 없습니다. 법을 잘 아는 변호사나 법무사를 찾아가서 비싼 상담료를 지불하며 굽신거려야 하니까요.
과거 지배층의 권력 유지 조건 중 하나는 ‘문자’를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법’을 아는 것으로 변화했지요. 이같은 상황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는 이들이 바로 법률가들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자신들은 피나는 노력으로 어려운 법조문을 이해하고 머릿속 깊이 새기며, 처리절차까지 배우는데 많은 세월을 보냈다고요.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일을 정당화하다 못해 신성시합니다.
문제는 법률의 추상성과 난해함에 대해 의문을 품는 이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지요. 법률가를 꿈꾸는 이들은 어려운 학문을 공부해서 국민 위에 서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추상성을 높은 곳에 올려둠으로써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 합니다.
학창시절 모 판사님의 로스쿨 원생 대상 특강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급변하는 IT 시대에 발맞추어 법률가도 변화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 응답시간에 한 학생이 손을 들어 질문했습니다.
“판사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만약 이렇게 IT가 발전하고 저희가 그 기술에 적응하면, 저희 밑에 있는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 같은 노동자들은 뭘 하고 먹고 살아야 합니까?”
순간, 눈이 번쩍 뜨여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질문에 당황하거나 놀라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후 판사님의 답변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다만 한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위에서 다른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다는 것을요. 단순히 추상적인 법률을 배운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의 위에 선 것으로 착각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법정에 서면 존경해야 하는 재판장님과 검사님, 변호사님이 묻는 말에만 단답형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법정의 주인공은 본래 피고와 원고입니다. 그리고 법률에 따라 판단하고 대답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법률가입니다. 검사와 변호사는 대리인, 판사는 심판인 셈이지요. 그런데 피고와 원고는 그들이 하는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그리고 판사가 판결문을 읽을 때, 변호사의 눈치를 살피며 내용을 짐작해야 합니다.
이같은 법의 추상화와 권력화에 대해 『저주받으리라, 너희 법률가들이여!』 의 프레드 로델은 법률가를 ‘자신이 법이라고 부르는 언어의 마술에 대한 참으로 신실한 광신자’라고 비판하며 법 자체의 추상성과 이를 이용하는 이들의 오만한 권력에 일침을 가합니다.
최근 법제처가 어려운 법률 용어를 쉽게 바꾼다는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한자어 또는 일본식 법률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변경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의치’를 ‘틀니’로 ‘저리’를 ‘저금리’ 등으로 바꾼다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실제로 2021년 12월 개정 예정인 법안의 사례를 찾아보았으나, 해당 단어만 교체했을 뿐입니다. 그 결과, 법조문은 여전히 난해한 채로 남아있습니다.
양자역학, 천체물리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이 추상성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이 학문들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쉬운 전달방법을 연구합니다. 그러나 유독 법률은 시민의 위에 자리를 잡고 변화하지 않습니다. 땅에 내려오는 순간, ‘법’으로서 권력을 잃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이처럼 올바른 시민사회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 시민이 아닌 소수 권력자의 도구가 됨으로써 손댈 수 없는 개념이 되었습니다.
법률이 가진 추상적 관념을 땅으로 끌어 내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삶에 실제적 표현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쉬운 법 조항으로 개정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정부와 시민단체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라는 최종 목표를 공유하고 함께 개정함으로써 진정으로 ‘땅 위에 선 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쓴이.
스몰브라더.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고, 바꾸길 원하는 사람
* 이 글은 '서평쓰기'를 수강하신 분이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