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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Nov 12. 2020

관료제를 넘어선 민주주의의 꿈

독일의 사상가 훔볼트는 말했다. “여기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정원 소유주는 조경사에게 정원을 맡긴다. 조경사는 매일 정원을 돌보고 가꾸며 진정으로 정원을 즐긴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소유자인가? 바로 조경사이다.” 우리시대의 민주주의가 이렇다. 민주주의는 말 그대로 ‘민중의 지배’를 가리킨다. 그러나 그것은 말 뿐이다. 진정한 지배자는 따로 있다. 바로 ‘관료’이다. 본래 관료는 ‘위탁 관리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그들이 주인이고 지배자이다. 

이론적으로 관료는 국민을 위해 일한다. 그러나 관료조직의 일반적 관심은 사업영역, 재정, 인력의 확대를 통한 자기 권력의 극대화에 있다. 관료조직은 공공성을 명분으로 사회 자원과 예산을 대거 빨아들이고, 자신에게 이로운 제도와 사업을 결정해나간다. 그를 통해 높은 월급, 특전, 권위, 퇴직 후의 안락한 삶을 누린다. 관료조직에 만연한 기밀주의도 마찬가지이다. 기밀주의는 적국이나 다른 기업이 아니라 자기조직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많다. 국민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정말 중요한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기 힘든 이유이다. 

생각해보면, 정부나 기업 뿐 아니라, 심지어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까지도 모두 관료제로 운영된다. 정치활동의 주체는 국민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정치를 위임받은 소수의 상류층 직업 정치인들과 관료들이다. 주식회사 역시 많은 사람의 돈이 투자되어 있지만, 회사를 운용하는 주체는 CEO를 비롯한 기업 관료들이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도 단체장을 비롯한 간부들 중심으로 돌아간다. 국가적 차원에서나 세계적 차원에서나 사회를 움직여나가는 것은 명실상부 관료조직이다. 관료조직은 모든 공공영역을 독점한다. 

관료들의 태도나 사고방식은 유사하다. 관료들은 중앙집중화, 전문화, 계층화, 형식화, 도구화에 익숙하다. 타인에 대해 권한을 행사하는 관료제는 모든 종류의 행정 업무에 적용이 가능하다. 관료들이 흔히 정부, 기업, 시민단체를 넘나들며 활동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는 학생운동 간부나 노동운동의 간부 출신들이 보수단체나 보수정당에서도 성공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종종 본다. 그것은 그들이 ‘조직인간’으로 사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상명하복에 익숙하고, 조직을 위해서라면 영혼조차 내놓는 충성스러운 관료적 면모는 좌우를 막론하고 요긴하게 쓰인다.  

역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 국가건 사회주의 국가건 민중이 권력을 갖고 통치하는 진짜 민주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자본주의 국가는 ‘다수의 지배’를 선거에서 ‘많은 표를 획득한 정치인의 관료적 지배’로 교묘하게 치환시켰다. 사회주의 국가 역시 ‘노동계급의 당파성을 주장하는 관료의 지배’를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곡해했다.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 모두 관료제(소수의 지배)에 의해 운영되었다. 그러면서도 서로 자신들이 진정한 ‘다수의 지배’를 실현했다고 선전해왔다. 

군사정부 시절, 관료집단은 ‘권력의 하수인’이었다. 관료집단은 절대 권력에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몸집을 키웠다. 그리고 민주화가 되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관료집단의 힘은 전혀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커졌다. 주지하다시피, 독재체제 하에서는 권력이 집중되어 있고, 절차를 무시한 전횡이 난무한다. 그러므로 민주화 과정에서는 권력의 분산과 절차의 회복이 중요해진다. 그런데 관료제 하에서는 권력을 나눠줄 대상도 절차를 관철시키는 주체도 관료조직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관료조직에 상당한 독립성과 자율권이 보장되었다. 

한때 권력의 개였던 관료들은 그렇게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권력의 통제를 벗어난 관료조직은 마음껏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민주 정부는 독립성과 자율권 보장이 관료집단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도할 것이라고 내심 기대했지만, 순진한 생각이었다. 고위 관료들 대부분은 기득권층 출신이었고, 보수적 편향을 보였다. 많은 권한을 위임받은 관료조직은 은밀하게 자신의 보수적 편향을 관철시키며 민주 정부를 곤란에 빠뜨렸다. 관료들에게 보장해준 독립성과 자율권이 자신을 옭아매는 밧줄이 되어 돌아온 이 역설! 민주 정부 10년은 결국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친 채 끝나고 말았다. 

사실 관료제는 민주주의와 조화되기 어려운 제도다. 관료제는 직업적으로 민중을 통치하는 일에 종사하는 특권집단의 조직과 그 제도를 가리킨다. 관료제는 위로부터의 ‘대리’와 ‘지시’를 의미하고, 관료들의 지도는 ‘인간을 억압하는 것’에 기반을 둔다. 지도부에 의해 계획되고 구상된 것이 국민에 의해 실행되는 형태로 운영되는 관료제는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 우리는 관료제를 넘어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는 제도를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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