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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Nov 12. 2020

정치 부패의 뿌리

미국의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은 이렇게 썼다. “나는 언젠가 남미의 어느 대통령으로부터 정권을 강화하는 법을 들었다. 그것은 정적이 돈을 마음껏 쓸 수 있게 허용하면서 외국 대사로 보내는 것이다. 그러면 부패가 드러난다. 그때 정적을 제거한다. 이것이 통상적인 방법이다.” 이 글의 메시지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일정한 조건만 주어지면 정치인들이 쉽게 부패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부패에 대한 공격이 진정성을 갖고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반사이익을 노리고 행해지곤 한다는 것.

사람들은 ‘부패’하면 공무원이 뇌물이나 접대를 받고 그 대가로 이득을 주는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애용되는 방법이 있다. 무위와 지연이 그것이다. 어떤 이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해줘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해주더라도 시간을 질질 끌어 피해를 입히는 것이다. 그럴 때 소위 ‘급행료’가 필요하게 된다. 이때 뇌물을 주는 사람은 불법적인 특혜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행정의 정상화와 신속화를 원할 뿐이다. 

부패는 ‘파생권력’으로부터 생긴다. 예를 들어 어떤 소매상 주인이 물건 납품을 원하는 도매상에게 선물을 받는 것은 부패가 아니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구매 담당자가 같은 이유로 선물을 받는 것은 부패이다. 왜냐하면 구매 담당자의 권력은 회사가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 권력은 ‘위임’에 의해 생긴 것이다. 위임된 권력은 허용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그것을 벗어나는 것은 권력의 오남용이고, 부패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모든 정치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된 ‘파생권력’이다. 말단 공무원에서부터 대통령까지 그렇다. 그러므로 주어진 권한 내에서만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문제는 ‘그 권한을 누가 정하는가?’이다. 국민이 정하나? 아니다. 국민에게는 대표를 뽑을 권리만 주어진다. 나머지는 공무원들과 대표들이 모두 알아서 한다. 자기 권한의 범주도 자신들끼리 정한다. 그 범주가 대폭 확장되면? 부패 행위가 합법적 범주 내에서 보호받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부패는 특정 관료의 문제가 아니다. 부패의 문제를 파고 들어가면, 우리는 매우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은 부패가 질병이나 일탈이 아니라 ‘정상적인 정치과정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정치에서 협상과 타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 이 협상과 타협이 ‘흥정’으로 변하면 어떻게 되는가? 부패가 된다. 둘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이며, 현실 정치에서 별 의심 없이 매끄럽게 연결된다. 

특혜의 교환은 정치의 본질적인 요소이다. 특혜의 교환은 정관계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정관계와 재계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나아가 정치인과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이를 테면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은 선거구민에게 특혜를 나누어주는 능력에 달려있다. 특혜를 줄 수 없다면 그의 영향력은 대폭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선거 때마다 후보들이 자신이 당선되면 모종의 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하는 것을 본다.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도 유권자들에게 금품을 살포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내는 부패 행위이다. 

정치 부패의 뿌리는 무엇보다 파워엘리트들이 동질적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그들은 서로 이웃해 살고, 고급 사립 유치원과 명문학교를 함께 다니며 왕래하고 친분을 쌓는다. 유학 가는 곳도 비슷하다. 대개는 미국 뉴욕이나 아이비리그로 간다. 결혼도 자신들만의 사교 모임 같은 데서 만나 이루어진다. 혼맥은 ‘한두 다리만 건너면 모두 사돈’이라 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들은 모두 친구이고, 동료이며, 친인척이다. 

정관계, 재계, 학계, 언론계의 요직은 누적된 자산과 인맥을 통해 결국 이들이 장악한다. 그들이 서로 배려하고 특혜를 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굳이 뇌물이나 접대도 필요 없다. 전화 한 통이면 협조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들의 야합은 물론 이익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다. 경력이나 생활양식이 비슷한 만큼 규범과 가치관도 비슷하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높인다. 그들은 서로 동질감을 느낀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추천하고, 후원하고, 지위를 교환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흔히 생각하듯 국가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해 있고, 자신을 후원하는 상류층 내부 파벌의 이해를 대변하며, 그 파벌을 책임진다. 정치적 능력은 그 파벌의 이익을 얼마나 정교하게 국가 이익으로 포장하느냐에 달려있다. 공익을 명분으로 사리를 취하는 부패는 정치 생활에서 지위 상승의 결정적 단계를 나타낸다. 지위가 높을수록 더 부패하는 이유이다. 부패는 현대 정치의 체질이며, 정밀하게 구조화되어 있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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