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맛공방 Nov 12. 2020

대중가요에 사랑 타령이 넘치는 이유

노래가 전할 수 있는 사상과 감정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중가요는 사랑 타령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가장 진부한 대답은 ‘사랑이 인간의 기본 정서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말은 맞다. 사랑의 감정은 인간의 기본 정서에 포함된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많은 정서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남녀 간의 사랑’이 대중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오늘날 대중가요가 어떻게 유통되고 소비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노래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위해서는 거대 미디어 기업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송국과 인터넷 포털 같은 미디어 기업들은 수많은 노래들 중에서 무엇을 유통시킬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런데 미디어 산업은 그 자신이 문화상품을 생산, 판매하는 장사꾼이면서 여타 제조업 분야의 상품 소비를 촉진시키는 바람잡이 역할도 한다. 그 필터를 통과하기 위해 문화상품은 미디어 산업의 이런 성격을 고려하고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대중가요도 마찬가지이다. 

미디어 기업을 통한 홍보와 마케팅이 ‘1차 확산’이라면, 옷 ․ 화장품 ․ 휴대폰 매장, 음식점, 카페, 백화점, 마트, 헬스클럽, 술집, 나이트클럽 같은 업소들을 통한 확산은 ‘2차 확산’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업소들 역시 그 자신이 음악의 소비자이면서, 행인과 손님들에게 음악을 알리는 전파자 역할도 한다. 여기에도 전제가 있다. 음악이 소비를 부추기거나, 적어도 장사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상점 안에서 사회비판적이거나 소비문화를 비판하는 내용의 노래가 흐른다고 생각해보라. 돈 쓰러 온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과 같을 것이다. 

사랑 노래는 당신이 고독하고 소외감을 느끼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혹은 ‘실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 노래는 사람들이 느끼는 모든 불만, 불안, 분노, 슬픔의 정치사회적 함의를 거세하고, 개인적인 남녀의 연애문제로 수렴시킨다. 특히 사랑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경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효과도 있다. 그것은 기득권의 입맛에도 맞다. 남녀 간의 사랑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생활감정이 늘 그것에 착목해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느끼는 정서가 모두 연애 문제로 귀결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도 사랑을 주제로 삼는 것은 편하다. 정치적 검열을 받을 염려도 없고, 대자본의 필터를 통과하기에도 좋다. 게다가 사랑 노래는 불특정 다수인 대중에게 소비되는 데에도 적합하다. 사랑 노래는 아무도 적으로 만들지 않으면서도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다. 세상에 ‘왜 하필 사랑을 노래하느냐?’고 시비 걸 사람은 없다. 이것이 사랑 노래가 과잉인 이유이다. 

우리는 흔히 ‘검열’ 하면, 정치 검열을 주로 떠올린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자본에 의한 검열을 더 경계해야 한다. 정치 검열은 사회적 의제로 떠오르기 쉽고, 저항을 불러일으키기도 쉽지만, 자본에 의한 검열은 공공연히 이루어질 때조차 비난의 표적이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은 정치사회적 의도를 갖고 문화상품을 통제하는 경우에도 ‘다만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아서 어떤 문화상품의 생산에 투자하지 않고, 그것을 유통시키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대자본은 다양한 문화적 생산물들 중에서 어떤 것이 대중의 눈과 귀에 닿게 되는가를 결정한다. 대중은 대자본에 의해 허락된 문화 생산물들 중에서만 호불호를 정할 수 있을 뿐이다. 대중가요도 마찬가지이다. 정치적이고, 사회비판적이며, 대중 의식을 일깨우는 노래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설사 만들어졌다 해도, 문화상품의 유통을 대자본이 독점하고 있어 대중과 만나기 어렵다. 대중가요가 사랑타령만 하는 것은 이러한 문화산업의 구조 탓이 크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우스 푸어’ 현상과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