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맛공방 Dec 13. 2020

‘88만원 세대’에게 전태일이 던지는 질문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나타난 노동현실과 문제의식

어릴 적 기억 하나. 가게에서 미싱을 돌리던 어머니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미싱 바늘이 어머니의 손가락을 관통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미싱 기름을 상처에 바르고, 시레빠기(자투리 천)를 친친 감아두었다. 그것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미싱사와 재단사로 일할 때의 응급처치 방식이었다. 약도 없고 병원도 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피복 공장의 노동자들은 응급사고가 발생하면 그렇게 대처했던 것이다. 부모님은 피복공장 → 양복점 → 세탁소로 평생 옷을 만지며 살아왔다. 나의 부모님이 평화시장에서 일할 즈음, 바로 그곳에 전태일이 있었다. 

박광수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1970년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 맞서 분신함으로써 한국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된 전태일(홍경인 분)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영화는 당시의 비참한 노동환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햇볕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공장,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이중 삼중으로 분할해놓은 작업 공간, 먼지가 솜처럼 내려앉은 전선과 희미한 알전구들, 턱없이 부족한 화장실,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게 하는 관리자, 극단적인 저임금, 야근에 특근, 점심도 굶은 채 하루 16시간의 노동에 시달리는 14~18세의 어린 여공들, 끊임없이 밀려오는 졸음, 그리고 공장에서 주는 각성제……. 영화 속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폐결핵에 걸린 여공이 각혈을 하자, 전태일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그러자 토한 피를 손으로 받은 여공이 울먹이며 말한다. “손 씻을 데가 없어요.” 

이런 환경 속에서 어린 여공들은 안질, 신경통, 위장병, 폐결핵에 시달렸다. 심지어 폐결핵으로 사망하더라도, 돈 한 푼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노동현실은 밖으로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정부는 아예 관심 밖이었고, 언론도 침묵했다. 전태일은 평소 대학생 친구 한명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친구가 있으면 ‘한자 투성이인 근로기준법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노동현실은 그렇게 진보적인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사각지대였다. 

전태일은 근로환경과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감독관청에 탄원하기도 했으며, 전단을 배포하고,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이름뿐인 근로기준법 법전을 화형에 처하고 석유를 끼얹고 자신의 몸에도 불을 당겼다. 전태일은 분신하기 전,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올해와 같은 내년을 남기지 않기 위해 결단코 투쟁해야겠다.” 그리고 40여년이 지났다. 과연 전태일의 소망은 이루어졌는가? 

전태일이 불쌍해하던 어린 여공들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자리를 수많은 시급 3천원의 알바생들, 인턴들, 파트 타이머들, 비정규직들이 메우고 있다. 당시의 여공들과 하루 종일 일해도 한 달에 88만원을 손에 쥐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의 간격은 얼마나 큰 것일까? 영화는 전태일이 자신의 몸을 불사름으로써 다른 수많은 전태일(각성된 노동자들)을 만들어냈음을 여러 장면에서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영화가 만들어진 1995년의 관점일 뿐이다. 

1997년 IMF 이후, 상황은 일변했다. 우리나라에도 신자유주의가 도입되면서, 노동자들은 가시적인 적을 잃었다. 적은 눈앞의 경영자나 정부가 아니라, 바다 건너 멀리서 금융투기를 일삼는 초국적 자본과 그를 비호하는 지역블록 ․ 국제기구 ․ 세계적 금융회사들이다. 적들은 모호해지고, 노동자들은 어떻게 싸워야 할지를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그전 같으면 총파업이라도 일어났을 유래 없는 실업률과 저임금 속에서도 모두 흩어져 생존을 위한 각개전투를 벌이는 데 급급하게 되었다. 기업이 여차하면 해외로 생산시설을 옮겨버리면 그만인 상황에서 노조와 노동자는 무기력해졌다. 전태일은 한 줌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스스로 불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금융자본주의가 세계적으로 붕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는 어떤 불빛이 필요한 것일까? 전태일은 묻고 있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독과 외로움 사이의 글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