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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맛공방 Dec 17. 2020

평화를 가로막는 정치, 그 비극의 역사

영화 〈마이클 콜린스〉에 나타난 정치의 호전성

이 세상에 “나는 전쟁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의 역사는 전쟁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유는 많았다. 전쟁은 정의, 민족, 종교, 심지어 평화의 이름으로 수행되었다.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일으켜 그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문제될 때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단 한 사람이고 더욱이 이 일에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이 말이 진실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닐 조단 감독의 〈마이클 콜린스〉는 정치가 갖는 호전성을 보여주는 역사 영화이다. 주인공 마이클 콜린스(리암 니슨 분)는 영국으로부터의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싸우는 독립 운동가였다. 독립운동의 지도자 에이몬 데 발레라의 부하였던 그는 발레라가 투옥되어 있는 동안 영국과의 전쟁(1919~1921)을 성공적으로 치른다. 그러는 동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마이클 콜린스의 명성은 높아진다. 그러자 발레라는 콜린스를 정적처럼 경계하기 시작한다. 

콜린스의 명성이 자신의 권위를 위태롭게 한다고 생각한 발레라는 그를 궁지에 몰아넣고자 한다.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거센 저항에 굴복한 영국이 협상을 제안하자, 발레라는 협상 대표로 콜린스를 지목한다. 발레라는 영국이 아일랜드의 완전 독립을 허락하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콜린스는 협상에서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반쪽짜리 자치안과 평화조약에 서명한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영웅이었던 콜린스는 평화조약에 서명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다. 발레라는 평화조약이 아일랜드의 분열을 획책한다며 콜린스를 괴뢰정부의 앞잡이로 맹비난했다. 아일랜드 독립운동 진영은 콜린스를 중심으로 한 온건파와 발레라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로 양분되었고, 콜린스는 그 내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저격당했다. 콜린스를 제거한 발레라는 결국 1932년 아일랜드 공화국 수상을 거쳐 1959년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정치의 본질적 문제는 누가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전쟁의 유용성이 설명된다. 전쟁 만큼 한 사람의 지도자에게 ‘초(超)권력’을 부여하는 상황은 없다. 전쟁은 이탈하려는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며, 정치 지도자를 영웅으로 만든다. 우리가 흔히 역사적 위인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 대부분이 전쟁을 주도적으로 수행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정치인은 분쟁에 있어서 머뭇거리지 않고 단호한 모습을 보일수록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경향이 강하고, 이런 대중 정치의 속성은 늘 매파에게 유리한 입지를 제공해왔다. 만약 대립의 시기에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마이클 콜린스처럼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 강경파에 의해 살해될 가능성이 많다. 평화주의자는 강경파의 정치적 입지를 좁히기 때문이다. 

그런 역사의 예는 많다. 나세르의 뒤를 이어 이집트 대통령에 올라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던 사다트 대통령은 1981년 평화체제에 반감을 품은 이슬람교도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중동 평화의 디딤돌인 오슬로 협정을 끌어내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 역시 1995년 극우 유대인 청년의 저격을 받고 숨졌다. 독립 후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의 분쟁을 불식시키려 했던 간디 역시 1948년 극우 이슬람교도에 의해 저격되었다. 우리의 경우에는 여운형이 그랬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합법과 반합법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립운동을 했던 여운형은, 해방 후 좌익과 우익의 대립 속에서 좌우합작을 추진했다가 1947년 같은 민족의 손에 제거되었다. 정치적 존재인 인간에게 평화란 요원한 일일까? 슬프지만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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