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맛공방 Dec 18. 2020

글을 쓰려면 콘텍스트성이 강한 책을 읽어야 한다

오늘날 책은 정보 습득을 위한 여러 매체 중 하나로 인식된다.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까닭에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종류의 미디어들이 생겨나도 그 내용의 질적 측면에서 책을 따라갈 수 없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체계적으로, 충분히 이야기해주는 매체는 여전히 책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깊이 안다’,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할 때, 그 역량이 대개 독서에서 비롯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책이 없다면 인간은 무엇에 대해서도 깊이 알 수 없고, 깊이 생각할 수 없다. 책을 읽지 않고서는 경험이 머릿속에서 물음이나 문제로 등장하지 않는다. 독서는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사유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다.

일반적으로 작가들이 책 한 권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6개월, 길면 몇 년이다. 그것도 집필 시간만 따졌을 때 그렇다. 머릿속에서 쓸 것을 기획하고, 자료를 모으고, 연구하고, 쓰는 시간까지 합치면 10여 년을 훌쩍 넘는 책들도 많다. 예를 들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기획부터 집필까지 20년 이상이 걸린 책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종의 기원』의 집필 기간 자체는 짧았다. 다윈이 자신의 경쟁자인 앨프리드 월리스보다 논문을 먼저 발표하기 위해 급하게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그것을 정리하는 과정까지 합치면 20년 이상이 걸렸다.) 그러나 이런 책도 마음만 먹으면 짧으면 며칠, 길어야 한 달이면 다 읽는다. 남이 수년 혹은 수십 년 동안 고민하고 연구한 성과를 며칠 만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물건은 세상에 책밖에 없다.

책 중에 콘텍스트성이 가장 강한 것은 단연 인문사회과학서다. 그런데 콘텍스트성이 있기는 하지만 인문사회과학서보다 그 성격이 약한 책들도 있다. 재테크, 처세, 학습법, 컴퓨터 관련 책 등 실용서들이 그렇다. 이런 책들은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어야 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대목만 찾아 읽어도 되는 경우가 많다. 글들이 일정한 정신적 맥락에 따라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인문사회과학서처럼 콘텍스트성이 강한 책이다. 콘텍스트성이 강할수록 정독, 완독해야 할 필요성이 늘어나고, 책의 도구적 성격이 강할수록 이럴 필요가 줄어든다.

책 모양으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용서보다 콘텍스트성이 약한 것도 있다. 국어사전이나 백과사전 같은 사전류가 그렇다. 사전도 유용한 물건이기는 하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쓰지’ 않는다. 그 속에 담겨 있는 지식들은 ‘모아진’ 것이다. ‘쓰인 책’이 아니므로 ‘읽기 위한 책’도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한다면, 그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어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은 지식과 정보들이 일정한 정신적 맥락으로 꿰어져 있을 때다. 공자는 ‘일이관지(一以貫之)’라는 말을 했다. ‘모든 것을 하나의 원리로 꿰뚫어 이야기함’을 뜻하는 말이다. 콘텍스트성이 강하다는 것과 ‘일이관지’는 같은 말이다.

많은 소재들이 하나로 꿰어져 있는 글, 그 ‘일관성’이 강한 글을 읽을 때 세계관은 정밀해진다. 콘텍스트성이 강한 인문사회과학서를 많이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문사회과학서를 읽으면 인문적 사유능력이 생긴다. 대중의 행동, 사회현상, 자연의 변화, 지식과 정보, 예술 작품, 과학기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 수 있고,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 

-졸저 <인문내공>에서


글쓴이

박민영. 인문작가. 글맛 공방 대표.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오래 글쓰기 강의를 했다. 『글을 쓰면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문내공』 등 글쓰기 책과 『반기업 인문학』,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등 인문사회과학서를 주로 썼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화를 가로막는 정치, 그 비극의 역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