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는 과거
과거
나는 우리의 연애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정확히 모른다.
때는 바야흐로 10년 몇 개월 전, 여느 소개팅과 다르게 언제 만나자라는 약속을 잡기도 전에 갑자기 오빠가 회사로 찾아왔다. 집을 데려다주겠다면서 집 근처에서 같이 치킨을 먹고 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첫 만남에 단둘이 차 안에서 무슨 얘기를 했을까 궁금하다. 그러고 나서 자연스럽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여러 번 밥을 먹었고, 처음으로 이 사람이 나를 호감 있어하는지 아닌지 긴가민가했다. 나는 촉이 좋은 편이기도 하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바로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나를 호감 있어하는 것 같은데 사귀자라는 말을 하지 않아서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라떼시절만 해도 여자가 먼저 고백하는 경우는 드물었을 때여서 내가 먼저 해야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 와중에 오빠가 [1박으로 같이 캠핑갈래?]라고 제안했다. 무슨 의도로 여행을 가자는 거지? 사귀지도 않는데 1박으로 가자고? 뭐지 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수십 번 하고, 친구들한테 얘기한 결과. 캠핑 가서 내가 먼저 고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캠핑 중에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나의 계획이 실행됐는지 안 됐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젠장... 오빠도 이상하게 그날일을 얘기해주지 않아서 아직도 누가 먼저 사귀자라는 얘기를 꺼냈는지 모른다. 우리의 만남은 그 이후 자연스럽게(?) 정식으로 시작됐다. 아직도 처음 포옹했을 때를 생각하면,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이 되살아난다.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터질 뻔했는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설렌다.(아 옛날이여~)
오빠와의 연애시작 당시, 내가 이제 막 사회인이 됐을 때라 이전 연애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그야말로 어른의 연애가 이런 거구나 싶었다. 오빠와의 모든 경험이 대부분 나에겐 처음이었다.
일주일에 7일을 만났고 회사에 있는 시간 빼고는 모두 오빠와 시간을 보냈다. 회사 끝나는 시간 맞춰서 매일 데리러 와줬고(내 회사랑 오빠집은 가까운 편), 근거 없는 야근을 일삼던 쓰레기 같은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늘 차에서 나를 기다려줬다. 집에 도착해서도 같이 더 있고 싶어서 1시간 넘게 걸어 다니거나 야식을 먹었다. 3교대 하던 오빠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나에게 연락해서 보고 싶다, 사랑한다고 말해줬다. 그땐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오빠가 나를 참 사랑했었구나라고 생각이 된다.
연애초에는, 자기 힘든 걸 생각하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해 행동하는 것이 나는 싫었다. 힘들면 쉬었으면 좋겠고 졸리면 데리러 오지 말고 잤으면 했다. 자기 자신보다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싫어서 화를 내기도 했다. 아직도 이 생각은 변함없지만 이제는 내가 2순위도 아닌 것 같은 느낌에 가끔씩 오빠한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의 형태가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서운한 건 없는데, 지금은 나를 예전만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슬프다. 오빠는 아니라고 반박하며 자기가 했던 말, 했던 행동을 조목조목 따져서 나를 이해시키려 하지만 오빠는 내가 어떤 부분에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지 캐치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내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 포인트가 있는데 말이다. 같이 한 시간이 10년이 넘었는데 이 부분은 왜 좁혀지지 않는 걸까? 알고 있어도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하기 싫은 건지 잘 모르겠다.
상황에 빗대어 말해 보자면,
나는 매 시간 연락하는 것보다 6시간 만에 갑자기 [네가 너무 보고 싶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데이트를 하다가 나를 자세히 바라보며 [오늘 너무 예쁘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나를 꽉 끌어안으며 [너무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사실 이런 것들은 옛날엔 자주 해줬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1도 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오빠가 해외취업하기 전부터..
근데 이런 상황을 내가 초래한 건가 싶다. 우리에겐 헤어졌지만 같이 여행 다니고, 데이트하고, 손만 잡고 다니는 이상한 사이가 꽤나 길었다. 그렇게 남자친구도 아니고 그냥 친구도 아닌 정의할 수 없는 사이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