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사이의 과거
애매한 사이 2년
4년 전이 나의 가장 최근 이별통보였던 것 같다. 오빠의 잘못으로(개인적인 집안일) 크게 싸우기도 했고 그때쯤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있을 시기라 나도 같이 동요됐던 것 같다. 이 사람과 함께 미래를 그리기엔 너무 불안했었다. 일 적인 것, 가족 관련된 것, 성격차이 등등...
[오빠 때문에 내 젊은 시절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 같아]라는 상처 주는 말을 하며 헤어지자고 했다. 헤어지고 초반엔 잘 지냈다. 주변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소개팅도 여러 번 했다. 그런데 이 소개팅 때문에 내가 얼마나 오빠화(style)가 됐는지 깨닫게 됐다. 상대방이 오빠보다 뭐가 별로인지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오빠 생각이 점점 났다.
오빠는 헤어지고 나서 이메일로 지금 자신의 감정, 나에 대한 사랑을 매일 보내왔다. 나는 이번이 오빠와의 마지막 이별이라고 생각하고 전화, SNS, 카톡 다 끊었는데 메일은 끊지 못했다. 메일 내용 대부분은 내가 없어서 죽을 만큼 괴롭다, 보고 싶다는 내용이 구구절절하게 쓰여있었다.
헤어지고 몇 달 만에 다시 보게 된 건 내가 회사에서 너무 아파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이때쯤부터 메일만 하다가 문자를 했었는데 내가 아프다는 말에 바로 달려와 병원에 데려다줬다. 깨달았다 내 생각을 끔찍이 해주는 건 오빠밖에 없다는 것을. 이런저런 상황으로 다시 만나게 됐다. 다시 만난 다라는 게 연인사이가 아닌 그냥 물리적으로 다시 만나는 사이다. 오빠와의 미래가 불안했기 때문에 내가 그러자고 했다.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갖고, 연인사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절대 하지 않으며 이성 친구 간의 사이에서 하지 않는 것들은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매주 데이트 하고, 해외여행을 같이 다니고 한 방은 쓰지만 절대 관계나 키스는 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 시기에 다른 남자를 만나면 바람인 건가? 바람이 아닌 건가? 정답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마음으로는 미안하지만 따지고 보자면 바람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는 것 같았다. 욕먹을 짓이겠지만, 나는 이 시기에 아주 어렸을 때 잠깐 사귀었던 X남자 친구와 자주 만났다. 물론 오빠는 모르게.
이 친구는 1년에 한두 번씩 나에게 안부인사를 했었다. 4년 전쯤엔 서로 집도 멀지 않았고 회사도 가까워서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게 된 것 같다. 대화를 하다 보면 대학생 시절이 생각나 좋았던 것 같다. 술 좋아하는 남녀사이 비슷하게 흘러가듯 이 친구와 만나면 대부분 술에 취했고 진한 스킨십을 하게 됐다.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다가 갑자기 이 친구가 나한테 고백을 했다. 솔직히 너무 오랜만에 듣는 외간 남자의 고백이라 굉장히 설렜지만 속모를 놈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거절했다. 이 친구도 오랫동안 만난 여자친구가 있는데 느낌상 잠깐 헤어졌을 때였던지 아니면 양다리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진지하게 생각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이런 식(?)으로 가볍게 만나자고 답했다.
처음엔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잠깐의 설렘이 좋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어떤 공허함이 생겼고 빨리 이런 관계를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와는 절대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진 않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연락을 하지 않게 되면서 관계를 끝내게 됐다. 그 후로 8개월 뒤쯤인가 지인 한 명이 이 친구의 카톡아이디가 있었는데 프로필 사진에 갓 태어난 아기 사진으로 돼있다며 이름을 보니 이 친구 아이였었더라는 재미난 결말도...^^ 친구, 연인관계는 끼리끼리라지만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이때쯤 아주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