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친구 연인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 새로운 동네친구들과 술과 함께 방탕한 나날을 보내던 와중 이렇게 살면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 내 몸이 이렇게 놀기에 허락하지 않는 것 같았다.
또 술을 취하도록 마시는 걸 싫어하는 오빠와 자주 싸우게 되면서 이런 이상한 관계를 끝내자.라는(애매한 사이 2년째 중) 말을 하며 자주 싸웠다. 물론 헤어지자는 말은 내가 했다.
마음을 다 잡고 오빠와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빠 없이 살 수 있을까? 이 한 가지 물음으로 며칠 동안 우울한 마음과 눈물로 지냈다. 그러나 이미 답은 나와있었다. 살 수 없다.
헤어질 수 없는 이유는 너무 많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오랜 기간을 만나왔고 믿음과 신뢰가 있는 사람이었다. 또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다.
미래를 함께할 생각으로, 오빠에게 보통 연인들처럼 다시 만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런데 오빠의 반응은 내 생각과 달랐다.
선뜻 [그래]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게 아닌 [생각해 볼게]라는 답변이 했다. 처음이었다. 이 전까지 여러 번 나의 요구로 헤어졌어도 항상 오빠가 먼저 잡았고 매달렸었다. 울면서 매달리기도 했고 수십 통의 편지를 절절히 쓰기도 했던 오빠가 나의 진심을 담은 고백에도 미동이 없었다.
미동이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번 싸움 중 [오빠 때문에 내 인생 망했어]라는 식으로 내뱉었던 말이 너무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변명을 조금 하자면 오빠와 만나면서 나도 친구들과 같이 당연히 이맘때쯤은 결혼을 하게 될 줄 알았었는데, 그렇지 못해 실패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 저 말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선택한 일을 오빠의 잘못으로 돌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우리가 결혼을 안 한 또는 못한 가장 큰 이유는 2가지라고 생각한다. 오빠의 불안정한 직업과 집안이었다. 또 이유가 오빠의 탓이긴 하지만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유이니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저 2가지 이유 중 한 가지만 안정적이었어도 결혼은 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내 미래를 불안정한 곳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으니, 이런 건 아무 쓸모 없어졌다. 오빠를 잡아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매달렸다.
우리 사이에 사랑으로 자존심을 내세우는 시기는 한참 지나 있었기 때문에 잡아야 된다는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빠는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했고 나도 바로는 힘들겠지만 조금씩 고쳐나가 보자라고 답했다. 오빠는 몇 주 고심 끝에 다시 시작해보자고 말해줬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해본 연인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새로 만나는 사랑보다 훨씬 어려운 관계라고 말해줄 수 있다. 몇 년을 안 보고 산 것도 아니고 6년을 연인처럼 지내다가 2년을 친구처럼 지내다가 다시 연인처럼 돌아가는 건 진짜 쉽지 않다. 아직까지(3년째) 노력 중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