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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 Oct 17. 2019

문화 여행, 우리 옛 다리

테마여행, 전통문화 여행길




우리 옛 다리에 대해 첫 감정이 일어난 순간


2005년 여름, '강원도 일대 자연-생태-문화'를 배우는 체험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들렸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정선 아우라지 마을입니다. 정선 아리랑 발상지이자 서로 다른 두 물길이 서로 합쳐 어우러지는 곳이라고 해서 아우라지 마을로 부르는 이곳에서 정겨운 우리 옛 정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징검다리를 만났습니다.


거대하고 웅장하지만 그다지 정이 잘 안 가는 현대식 다리와 달리, 송천과 골지천이 서로 만나는 지점 인근에 놓여있는 징검다리를 보고 있자니 뭔가 아련한 느낌이 강하게 전해집니다. 유럽에서 만난 다리를 보며 이국적인 멋스러움을 느꼈다면 이날 옛 모습 그대로 띄엄띄엄 놓여 있는 징검다리를 보면서 오랫동안 잊고 지내온 고유한 우리 정서를 끄집어냈다고 할까요?


어린 시절 자주 놀러 갔던 외갓집 인근에 흐르던 하천 징검다리 추억도 되살아났고, 엄마가 종종 들려주던 등하굣길 징검다리 이야기도 떠올랐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인 소나기에서 소년과 소녀를 서로 연결해준 첫 매개체인 징검다리 장면 역시 그날 제가 아우라지 징검다리를 통해 떠올렸던 순간 중 하나입니다.


소녀는 소년이 개울 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조약돌이 날아왔다.


잊고 있었던 옛 정서를 끄집어내 준 정선 아우라지 마을 징검다리





지역 여행길에서 만난 우리 옛 다리


사실 다리 하나를 보기 위해 그곳까지 일부러 찾아가는 경우는 드뭅니다. 다리 존재 자체가 닿을 수 없는 두 지점을 이어주는 연결자 속성을 지닌 것처럼, 다리는 여행지를 대표하는 주인공이기보다는 여행지가 화려하게 빛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조연 배우입니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옛 다리를 경험했던 모든 순간 역시 길을 걷다 우연히 그 다리를 발견하게 된 경우이지요.


미호천 트래킹을 하던 도중에 진천 농다리를 처음 만난 순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만남입니다. 산과 물길이 만들어 내는 자연경관 안에 살포시 들어앉아 풍경을 완성시키는 그 멋에 푹 빠져들었지요. 고려시대부터 천년이 넘도록 꿋꿋하게 미호천 물길을 이겨내고 있는 농다리를 거닐면서 우리 전통 다리에 대한 관심을 가졌답니다.


교수님과 연구실 사람들과 같이 떠난 무주 반딧불 축제에서 남대천 섶다리를 처음 만난 순간 역시 잊지 못할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섶다리는 옛날부터 통나무, 솔가지, 흙을 이용해 만들어 초겨울부터 여름까지 사용하다가 장마가 지면 떠내려 가도록 했던 임시다리입니다. 당시만 해도 그냥 평범한 옛 다리를 재현한 것에 불과했는데 몇 해 전 CNN이 한국에서 꼭 봐야 할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로 무주 섶다리를 소개하면서 지금은 외국인이 일부러 찾아오는 명소로 유명세를 타고 있습니다.


지역 여행길에서 만난 우리 옛다리 - 진천 농다리, 무주 남대천 섶다리





도시에서 만나는 우리 옛 다리


도시에서 만나는 옛 다리는 자연에서 만나는 옛 다리와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어쩔 때 보면 세월과 함께 물길이 바뀌면서 다리 역할을 하지 못하고 덩그러니 다리만 남아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다리를 보면 왠지 생명력이 다 끝난 것 같아 짠하고 마음이 좋지 않은데, 도시에서 만나는 옛 다리는 여전히 우리 일상 속에서 살아 쉼 쉬고 있지요.


안양천 만안교는 도시에서 바쁘게 흘러가는 우리 일상을 담아내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만났던 다리처럼 현대 도시 풍경 속에서 전통 다리가 갖고 있는 예스러움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지요. 중랑천 일대로 탐조 나들이를 나섰다가 만난 살곶이다리, 청계천 종주길에서 만난 광통교 역시 도시 공간 속에서 자기 시간을 생생하게 이어가고 있는 소중한 우리 옛 다리입니다.   


도시 여행길에서 만난 우리 옛 다리 - 안양천 만안교, 중랑천 살곶이 다리, 그리고 청계천 광통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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