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남겨준 요리 수첩을 따라 하면서 엄마를 기억하기
스물이 훨씬 넘을 때까지 요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복학 준비를 위해 집을 떠나던 날 엄마가 제 손에 요리법이 적힌 수첩을 건네주셨지요. 가족과 다시 같이 살면서 엄마 요리책을 한동안 잊고 살다가 몇 해 전 엄마가 돌아가신 후 엄마 요리 수첩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20년 전보다 훨씬 두꺼워진 엄마 요리 수첩을 뒤적거리며 이제는 맛볼 수 없는 엄마 손맛을 복원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요리란 엄마 손맛을 따라 하면서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한 시간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동아리 여행을 갔던 어느 날, 게임에서 져 밥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서 있기만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밥도 할 줄 모르던 그 시절 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음식 만드는 일은 저랑 전혀 상관없는 그런 일로 생각하고 살았지요.
군대 제대 후 복학 준비를 위해 다시 집을 떠나던 날 엄마가 작은 수첩 한 권을 건네주십니다. 수첩을 펼쳐보니 엄마가 평소 자주 해 주시던 국, 반찬 조리 방법이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밥도 한번 안쳐본 적 없던 제 삶에 요리란 단어가 처음 들어온 순간이었지요. 그리고 가족과 다시 모여 살 때까지 어설프게나마 엄마가 적어준 대로 재료를 손질하고 식사를 준비하며 엄마 요리를 따라 했던 그때 그 시절입니다.
다시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집밥 시절을 보내며 엄마 수첩을 잊고 살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엄마를 떠나보내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제게 다시 요리 수첩을 건네주십니다. 20년 전만 해도 열대여섯 가지 요리법만 있었는데 그때보다 수첩이 꽤 두꺼워졌습니다. 이제는 음식 가짓수도 많아지고 음식에 넣어야 할 재료와 양념 용량도 세세하게 적혀있습니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없더라도 엄마가 해주던 맛을 그대로 유지하라고 김치와 장 담그는 법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옆에서 고추장 담는 걸 지켜보라고 할 때는 그 의미를 몰랐는데 그렇게 엄마 수첩을 다시 읽으며 그 시절을 떠올리니 엄마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 그렇게 엄마 수첩을 손에 쥐고 홀로서기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엄마 손맛을 따라 하며 그 맛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요리를 할 때면 엄마 요리법을 옆에 두고 하나하나 읽으면서 순서대로 진행합니다. 그 시간은 마치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 같지요. 그렇게 엄마 기억을 떠올리며 식사를 준비합니다. 아직은 엄마 손맛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일이 멀게만 여겨지지만 어쩌다 가족이 기억하는 그리운 엄마 손맛을 성공하는 날이면 그날은 그냥 이유 없이 행복한 날입니다. 그렇게 제 생활 속 작은 프로젝트인 "Family Cook Book"을 계속 이어가려 합니다.
"제게 요리란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 한 모든 시간을 기억하는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