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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 Jun 13. 2019

동네 산책, 서울 광진구 화양동

테마여행, 동네 역사문화 산책길 




화양정과 화양동 느티나무


어떤 곳이든 그곳에 깃든 정체성이 만들어지게 된 첫 시작점이 있습니다. 흘러가는 시간속에서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하고 때론 완전히 다른 성격을 지닌 곳으로 변하기도 하지요. 동네 역사문화 산책 첫 번째 편인 서울 광진구 화양동 이야기는 아차산에서 시작합니다.   


한양 성곽길을 걸으며 배운 전통지리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한양도성을 건립하면서 중요한 산계 기준으로 삼았던 '내사산-외사산'입니다. 내사산은 경복궁을 중심으로 서울 성곽을 이루는 북악산(북), 인왕산(서), 남산(남), 낙산(동)을 지칭합니다. 외사산은 서울 성곽 바깥쪽에서 한양도성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북한산(북), 덕양산(서), 관악산(남), 아차산(동)을 의미합니다.  


아차산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군사거점으로 활용되어 온 곳이기에 조선 왕실도 한양 도성을 건립하면서 아차산을 외사산 동쪽 산으로 지정했을 것 같습니다. 이후 조선 왕실은 아차산 일대에 왕실 목장을 운영합니다. 여기서 말을 키우고 군사훈련을 했으며 때때로 왕이 직접 행차해 이를 참관했다고 합니다. 왕이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아무데서나 머무를 순 없었겠지요? 그래서 이곳에 규모가 엄청나게 큰 정자를 지었는데 그게 바로 화양정입니다. 


능동, 군자동, 화양동을 나누는 능동 사거리 인근에 옛 화양정 터가 있습니다. 세종 14년인 1432년에 이곳에 정자를 짓고 대대로 왕이 행차했을 때 화양정을 지휘부로 이용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일본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긴 이듬해인 1911년에 안타깝게도 벼락을 맞아 불타 없어졌습니다. 


비록 화양정은 사리지고 없지만 동네 이름을 화양동으로 지으면서 '화양'이라는 이름이 우리 생활 속에서 살아 남았습니다. 옛 화양정 자리에 화양동 주민센터가 들어서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닐겁니다. 그 시절 조선왕실 사북지 말 목장을 관리하던 지역 중심부였던 맥이 이어지는 사례이기도 합니다.  


화양정 터에는 수령이 700년이 훨씬 더 넘은 느티나무 노거수가 살고 있습니다. 긴 시간 동안 묵묵히 화양정 터를 지켜온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기념물 제2호로 지정받았지요. 지금은 화양정보다 화양동 느티나무가 더 알려져 있지요. 


이곳에 깃든 비운의 왕인 어린 단종 이야기가 있습니다. 삼촌 세조에 왕위를 빼앗긴 단종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가기 위해 광나루로 향하던 도중에 이곳 화양정에서 하룻밤을 지냈다고 합니다. 그날 밤 화양동 느티나무 아래에서 단종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대성통곡했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화양정 터, 그리고 계절 따라 변하는 화양동 느티나무





모진동에서 화양동으로, 건대 일감호에 숨어있는 이야기


사북지 말 목장 인근에 가난한 빈민촌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건국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지만 예전에는 이곳 일대가 모두 질퍽질퍽한 수렁이었답니다. 조선왕실 목장에서 기르던 말이 방목 중에 부근 수렁(현재 일감호)에 빠져 죽으면 빈민촌 사람들이 수렁 위에 널빤지를 띄워 놓고 들어와 말 사체를 건져낸 후 그 말고기로 연명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 오지요. 


기구한 아픔을 가진 가난한 동네, ‘모진 동네’로 불리던 것이 1914년 일제강점기 시절 이후 쭉 모진동이라는 법정명칭으로 불리게 된 유래입니다. 그러다 거대한 진흙탕이었던 곳은 시간이 흘러 일감호를 품고 있는 대학 캠퍼스 공간으로 변신했습니다. 오랫동안 모진동이라는 이름에 담긴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지역주민과 건대 측 요청이 받아들여져 2009년 4월 화양동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었지요. 


건대 일감호 둘레길을 걷다 보면 일감호에 얽힌 이야기 하나를 읽을 수 있습니다. 건국대학교가 1955년 캠퍼스를 개발하면서 수렁을 없애려 했지만 도저히 수렁을 메울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냥 물을 채워 호수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모두가 지우고 감추고 싶은 흑역사 모진동 이야기는 빠져있지만 '낮은 습지로 물이 많던 곳'이라는 문구를 통해 그 옛날 모진 동네 크기와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조선 왕실 목장과그 옆 모진 동네 사람들 이야기가 숨어 있는 곳, 건국대학교 일감호 





건국대학교 캠퍼스 내 문화재 투어- (구)서북학회회관, 도정궁 경원당


건국대학교 캠퍼스를 거닐다 보면 일감호 옆에 독특한 외관을 갖춘 건물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바로 (구)서북학회회관 건물입니다. 1908년  애국문화계몽 단체인 서북학회가 기울어가는 나라 힘을 되찾기 위해 근대교육을 시작하면서 지은 건물입니다. 그러다가 1939년에 건국대학교 설립자인 상허 선생에게 소유권이 넘어갔고, 1955년 건국대학교 캠퍼스를 조성하면서 종로구 낙원동에 있던 기존 건물을 해체하고 이곳으로 옮겨 복원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시기 당시 중국풍으로 지어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제 제53호로 지정받았고, 지금은 건국대학교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건대캠퍼스에는 (구)서북학회회관 말고도 또 다른 건축 문화재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흥선대원군이 지었다고 하는 도정궁 경원당(1872년 건립)입니다. 조선시대 후기 서양문물 영향을 받은 한옥양식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가치를 인정받고 서울시 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을 받았지요. 원래는 종로구 사직동에 있는 건물인데 도시개발과 함께 성산대로를 만들면서 없어질 뻔하다가 1979년에 건대 캠퍼스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건대에서 운영하는 전통문화교육 공간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건국대학교 캠퍼스 문화재 투어 - 구서북학회회관(좌), 도정궁 경원당(우)





화양동 대동우물 이야기


건국대학교 캠퍼스 밖으로 나옵니다. 옛 민중병원 길 건너 맞은편 화양동 주택가 골목길을 걷다 보면 현대식 동네에서는 볼 수 없는 우물터가 하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화양동 안골로 불리는 지역주민들이 사용하던 옛 우물터, 대동우물입니다. 안내문에 의하면 1970년대까지 마을 주민들이 우물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자물쇠와 함께 뚜껑으로 우물 입구가 닫혀 있습니다.   


도시개발과 함께 옛 서울 흔적이 거의 다 사라진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대동우물과 같은 지역문화유산을 발견하는 일은 꽤 반갑습니다. 여행객이 일부러 찾아올 일 없는 작은 우물터 하나에 불과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화양동 역사문화 산책길 한 페이지를 채워준 좋은 지역문화 자원으로 인연을 맺은 곳이랍니다. 오랫동안 저 자리에 교과서 밖 역사문화 교재로 잘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화양동 대동우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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