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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 Aug 01. 2019

정겨운 우리 맛과 향, 깻잎찜

엄마 사랑과 정성이 담긴 맛, 엄마표 깻잎찜 



오래된 우리 맛과 향, 우리 안에 살아 숨 쉬는 깻잎 DNA


흔히 깻잎을 가장 한국다운 맛을 가진 식재료 중 하나라고 합니다. 실제로 2001년 영국에서 어학연수 생활을 할 때 현지에서 구하지도 못하고 다른 걸로 대체할 수도 없었던 식재료가 바로 깻잎입니다. 당시 같이 공부하던 한국인 학생들이 김치, 된장, 고추장 못지않게 많이 찾은 것이 바로 깻잎 반찬이었습니다. 각자 재주껏 구해온 통조림 깻잎 반찬을 통해 아쉬운 대로 그 맛을 누릴 수 있었지요. 


이 땅에서 나고 자라 우리 고유한 입맛으로 자리 잡은 깻잎 제철은 여름입니다. 여름 더위가 하루하루 깊어질수록 텃밭에 심은 들깻잎 역시 금방 따먹어도 될 정도로 제법 풍성해집니다. 허리를 숙여 깻잎을 건드리니 향긋한 깻잎 향이 은은하게 퍼집니다. 깻잎을 따고 나면 어느새 깻잎 향이 손에 깊이 배어 있습니다. 깻잎 향이 구수하고 정겹게 느껴지는 걸 보면 제 안에 깻잎 DNA가 완전하게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조카들이 여름방학 때 집에 오면 아버지는 손주들을 데리고 텃밭으로 가십니다. 아주 오래전 증조할머니가 밭에서 자라는 깻잎을 따 손으로 비빈 후 어린 아빠 코에 갖다 대며 이게 깻잎 향이라고 알려주었다던 옛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는 증조할머니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조카들에게 향긋한 깻잎 향을 건네줍니다. 저는 엄마표 깻잎찜을 통해 조카들에게 오래된 우리 입맛을 알려주고 있지요. 





깻잎찜에 얽힌 추억 이야기


깻잎은 말 그대로 이 땅에서 만날 수 있는 흔하디흔한 채소입니다. 단돈 1,000원에 깻잎 5묶음을 사 두면 쌈을 싸 먹든 밑반찬으로 먹든지 몇 날 며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가성비 최고인 식재료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엄마는 깻잎을 이용해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명절이면 빠지지 않는 깻잎전부터 시작해 깻잎찜, 깻잎 볶음, 깻잎김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음식 추억을 남겨주셨지요. 


깻잎찜은 초중고 12년 동안 즐겨 먹었던 추억의 도시락 반찬이기도 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된장을 이용해 만든 경상도식 콩잎 반찬을 자주 싸 왔지만 저는 엄마가 만들어준 짭조름한 깻잎찜을 더 좋아했답니다. 매일매일 도시락 싸 갖고 다니면서 많은 반찬을 먹었을 텐데 제 기억 속에서 깻잎찜이 살아남은 걸 보면 분명 엄마표 깻잎찜은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상징적인 엄마 손맛 중 하나임에 분명합니다. 


사실 젓가락질이 서투르던 시절 반찬으로 깻잎찜을 먹는 일은 그리 쉬운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엄마가 깻잎을 한 장 한 장 손으로 떼서 제 밥그릇 위에 얹어 주었지요. 젓가락질이 좀 익숙해진 이후에도 엄마는 제가 깻잎 반찬을 먹을 때면 깻잎을 쉽게 떼어낼 수 있도록 슬그머니 도와주곤 했습니다. 그래서 깻잎 반찬을 보면 아직도 엄마가 어린 자식이 깻잎찜 먹는 일을 도와주던 그 시절 그 모습이 떠오르곤 합니다.  





깻잎찜을 만들며 뒤늦게 느낀 엄마사랑


깻잎찜은 양념장 만드는 일도 그렇고 조리시간을 따져봐도 그리 복잡하거나 어려운 반찬은 아닙니다. 불에 올린 후 걸리는 완성 시간은 5분이면 충분합니다. 다만 불에 올리기 전까지 준비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습니다. 깻잎 1묶음이 20장씩이니 보통 깻잎찜 한 번 해 먹기 위해서는 깻잎 100장을 일일이 물로 씻어내며 손질해야 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다시 깻잎  한 장 한 장 양념장을 발라주는 과정은 말 그대로 급한 성질을 다독거리면서 인내심을 갖고 거쳐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관문입니다. 


먼저 흐르는 물에 깻잎을 깨끗이 씻어줍니다. 그리고 깻잎 물기가 빠지는 동안 양조간장, 물, 물엿, 고춧가루, 마늘, 들기름으로 양념장을 만듭니다. 그리고 팬에 깻잎을 켜켜이 쌓아 올리며 준비한 양념장을 한 장 한 장 골고루 발라줍니다. 그리고 뚜껑을 닫고 중간 불에서 5분 정도 쪄내면 양념장 국물이 간간하게 배어있는 향긋한 깻잎찜이 완성되지요.


엄마가 만들어 준 깻잎찜을 받아먹기만 할 때는 몰랐습니다. 제 손으로 깻잎찜을 직접 만들어보니 이건 더 이상 단순하고 흔한 밑반찬은 아닙니다. 깻잎찜을 밥상에 올리기 위해 엄마가 거쳐야 했던 과정과 노력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모든 건 엄마가 자식들에게 묵묵히 건네 준 또 다른 사랑 표현이었습니다. 



엄마가 페트병에 담아둔 들깨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 텃밭에 조금만 뿌려도 깻잎 따 먹기엔 충분할 거야. 네 몸에 잘 맞는 채소니까 엄마 없더라도 알아서 잘 챙겨 먹어라. 알았지?

정겨운 우리 맛과 향, 깻잎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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