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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 Sep 01. 2019

짭조름한 여름 맛, 가지무침  

  추억이 쌓여 특별함이 더해진 엄마 손맛, 가지무침





잃어버린 가지 맛을 찾은 날


꽤 오랫동안 가지 반찬이 밥상에 올라오지 않은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엄마가 차려주던 집밥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기만 하던 때라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지란 존재 자체가 지극히 소박하고 평범한 식재료였기에 특별히 그게 먹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요.


아마 2003년 즈음일 겁니다. 양평 양수리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 프로그램에 참여해 난생처음으로 제 손으로 직접 흙을 만지며 먹을거리를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나고 자란 수확물을 들고 집에 오면 엄마가 솜씨를 발휘해 맛있는 반찬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수확한 먹거리를 매개로 엄마와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기 시작했지요.


그 해 여름, 첫물 가지를 수확해 집에 돌아온 날입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오랜만에 가지무침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옛날 시골에서 먹던 가지 맛을 느껴본다며 저에게 수고했단 인사를 건네주셨습니다. 그제야 그동안 왜 우리 집에서 가지 반찬이 모습을 감추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지요.


옛날에는 가지를 쪄도 가지가 탱탱하고 가지 맛이 살아있었는데, 요즘엔 가지를 하우스에 길러서 그런지 가지 맛과 향도 별로고, 가지를 무치면 흐물흐물 곤죽이 돼서 못 먹겠더라. 그런데  이건 옛날 시골에서 먹던 가지 맛과 비슷해서 좋네. 우리 아들 수고했어!!






평범한 가지무침에 담겨있는 엄마 이야기



엄마와 대화채널을 복구하고 난 이후, 엄마는 밥상머리에서 종종 옛날 시골집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엄마는 어린 나이부터 스스럼없이 부엌을 드나들었답니다. 외할머니가 저녁을 준비할 때면 옆에 붙어서 조잘조잘 수다를 떨면서 나물을 무치거나 다른 밑반찬 만드는 법을 눈동냥으로 배웠답니다.


옛날 시골에서 외할머니가 가지 무침 반찬을 만들던 이야기는 제가 좋아하는 엄마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옛날 시골에서 가마솥으로 밥을 하면서 동시에 가지를 같이 쪘다고 합니다. 가마솥에서 맛있게 푹 익은 가지를 손으로 쭉쭉 찢은 후 갖은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맛과 향이 살아 있는 맛있는 외할머니표 가지무침 반찬이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외할머니는 된장찌개를 넣을 땐 된장 쓴 맛을 없애기 위해서 미원 열 알캥이만 넣고 끓였고, 가지무침을 비롯한 나물 반찬을 할  때 미원을 살짝 넣었답니다. 그 영향을 받아서인지 몰라도 가지무침을 하는 날은 엄마가 평소 사용하지 않던 미원을 사용하는 특이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다른 나물 반찬 할 때도 그렇고 가지무침을 하고 나면 나면 그릇에 양념국물이 조금 남아 있지? 그러면 엄마가 솥에서 귀한 쌀밥 한 숟갈 푹 퍼서 자투리 양념에 싹싹 비벼 내 입에 쏙 넣어주면 그게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 그 맛은 평생 못 잊지. 그래서 엄마 따라 부엌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엄마표 가지 무침을 따라 하면서 여름 떠나보내기



여름을 맞이해 엄마 수첩을 뒤적이며 가치 무침을 처음 만들어 봅니다. 요즘엔 계절 가리지 않고 식재료를 구할 수 있어 제철이란 게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하지만 제철을 따져 밥상을 차리던 엄마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가지는 여름에만 먹게 되네요. 너무 평범해서 맛이 어땠는지 기억도 못하던 가지무침이었는데, 막상 추억이란 게 쌓이고 나니 어느새 특별한 반찬이 되어 있습니다.


엄마가 가르쳐 준대로 실온에서 며칠동안 놔 두고 수분을 날립니다. 그리고 준비한 찜기에 손질한 가지를 올린 후 쪄냅니다. 연하게 잘 쪄진 가지는 손으로 쭉쭉 찢어야 제맛이라는 집안 비법답게 먹게 좋게 손질합니다. 그리고 외할머니와 엄마 손맛 그대로 집간장, 다진 마늘, 다진 파, 깨소금, 고춧가루, 그리고 미원 몇 알캥이를 넣고 조물조물 무칩니다.


묵직한 기름 맛이 느껴지는 가지볶음과 달리 가지무침은 짭조름한 집간장 맛이 주인공 역할을 합니다. 거기에 알싸한 마늘과 파맛이 더해져 입 안에 풍미를 더해주지요. 한여름 제철 채소인 가지 반찬답게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먹어도 좋습니다. 바쁠 땐 다른 반찬 필요 없이 가지 무침에 밥을 넣고 쓱쓱 비벼 먹으면 그 자체로 훌륭한 비빔밥이 되기도 하지요.  이렇게 가지무침 반찬을 만들어 먹으면서 한 해 여름을 흘려보냅니다.



가지를 더 맛있게 먹을려면 가지 수분을 충분히 말린 후 사용해야 해. 가지 사오면 비닐봉투에서 꺼낸 후 2~3일동안 그냥 놔둬. 그러면 가지를 쪄도 흐물거리지 않고 탱탱한 맛이 살아 있을거야. 알았지?


여러 가지 추억이 쌓여 있는 내림손맛, 가지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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