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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경 Aug 10. 2019

밤은 밤답게

조금 어두워도 괜찮아요.

                                                                                                                                                                                                                                                                                                            



빛공해에 대해 처음 알게 된 순간


대학강사 생활을 하면서 수업시간에 수강생들과 같이 볼 수 있는 시청각 자료를 많이 이용했습니다. 일반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를 수업교재로 쓰곤 했지요. 그러던 차에 만화 심슨을 보면서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환경 이슈를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빛공해라는 개념이었습니다.


빛공해(light pollution)는 인간에 의해 발생된 필요 이상의 빛이 인간자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걸 의미합니다. 심슨가족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그 누구보다도 친환경 가치에 공감하고 실천하는 리사가 스프링필드에 발생한 빛공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해나가는 에피소드입니다.


추억의 명곡 빈센트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리고 심슨 가족이 다시 찾은 밤하늘을 축하하면서 별을 바라보는 엔딩 장면은 묘한 울림을 건네주는 명장면이었지요.


빛공해 개념을 가르쳐 준 만화 심슨





캠퍼스에서 발견한 빛공해 문제


2011년 조용하던 학교 캠퍼스에 개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캠퍼스 외곽 숲이 사라지고 곳곳에 새로운 건물과 경기장급 조명시설을 갖춘 테니스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저녁식사 후 우연히 올라간 건물 옥상에서 '이게 빛공해구나'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평소처럼 어둠을 짙게 드리우고 있어야 할 천문대 부근 밤하늘이 선명한 빛 기운을 내뿜고 있습니다. 빛을 따라 찾아가 보니 새로 만들어진 테니스장이 만들어 낸 빛이었습니다. 천문학자 꿈을 키우던 리사가 빛공해로 인해 천체관측에 실패하고 화가 나 '밤하늘 되찾기 운동'을 시작하게 된 현실판 버전이었습니다.


학교 캠퍼스에서 발견한 빛공해





일상생활에서 빛공해 문제를 줄여나가던 순간들



오랜 학교 생활을 마치고 다시 서울로 되돌아왔습니다. 집에 와보니 엄마가 바깥 가로등 조명이 너무 밝아 밤에 푹 못 잔다고 불편함을 이야기하십니다. 누나와 상의해 안방 커튼을 암막커튼으로 바꾸어 드리고, 서울시 다산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민원을 넣으니 며칠 후 가로등에 빛 가리개를 설치해 주었습니다. 완벽하게 빛을 차단한 건 아니지만 이런저런 노력을 기울인 끝에 엄마는 나름대로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지요.


빛 가리개가 가져온 변화는 그뿐만 아닙니다. 그동안 마당에서 기르던 자두나무에 열매가 맺힌 적이 없었는데 가로등 빛 가리개를 설치한 이듬해에 처음으로 자두가 열렸습니다. 그동안 밤새 너무 환했던 가로등 조명이 줄어들어서였을까요? 많지 않지만 소중한 첫 수확을 얻을 수 있었지요. 첫 자두를 따던 날 엄마가 옛날 외할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옛날 엄마가 그러는데 시골집 텃밭에서 그렇게 잘 자라고 수확량도 많던 오이가 집 앞에 가로등이 들어온 이후부터 하나도 열리지 않았다더라. 식물도 밤에 잠을 자야 하는데 가로등이 밝아서 잠을 잘 못 자니 열매가 잘 맺을 수 있겠니? 우리 자두도 그렇고 엄마 말도 그렇고 그게 다 맞는 말인가 보다.


집 앞 가로등 빛공해 문제를 해결한 순간



바깥 조명을 해결한 후 이제는 집 안을 둘러봅니다. 방 크기와 상관없이 형광등이 지나치게 밝은 걸 알아차릴 수 있었지요. 부모님과 상의한 끝에 집안에 있는 모든 형광등을 절반으로 줄였습니다.  처음 며칠은 조금 어둡다 싶었는데 이내 새로 조정한 밝기에 익숙해지면서 불편함은 사라졌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덜 나오는 전기세는 일상 속 빛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은 보너스 선물입니다.


실내 조명 밝기 줄이기 실험에 성공한 날




조금은 어두워도 괜찮아요. '밤은 밤답게'  



그러고 보니 제 기억에 소중히 남아 있는 건 늦은 밤까지 켜 있는 화려한 도시 야경에 대한 추억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평상에 누워 여름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은하수, 군 복무 시절 강원도 양구 오지 산골에서 중에 만난 혜성, 유성우, 반딧불이 추억은 이제까지 제가 경험한 몇 안 되는 밤하늘에 얽힌 소중한 자연감성 추억거리입니다.


한 때는 화려한 도시 야경에 푹 빠져 있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게 최선이고 최고로 생각하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속도를 늦추며 세상을 바라보니 그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소소하게 밤을 밤답게 느끼는 시간 계속해서 만들어보렵니다.


조금은 어두워도 괜찮아요. '밤은 밤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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