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집을 떠나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다이어리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다이어리를 이용해 학사일정을 관리하고 개인 일상을 기록하는 한편 그날그날 지출을 기록하며 나름 용돈도 관리했지요. 사실 그때는 별 뜻 없이 시작한 기록이었습니다. 기록에 담긴 의미도 잘 알지 못한 채 그날 하루를 단어나 문구로 간략하게 적어두었던 그때입니다.
그렇게 3년이란 시간을 다이어리 안에 차곡차곡 담아두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밖에서 볼일을 보고 집에 왔는데 다이어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에서 어떻게 잃어버린 건지 모르는 그 상황이 마냥 정말 허탈하고 당황스러웠지요.
막상 다이어리가 사라지고 난 그 순간 그제야 알았습니다. 다이어리 달력만 봐도 제가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굳이 기억할 필요 없이 쉽게 알 수 있었는데 사라진 다이어리와 함께 그 기억과 추억 역시 지워져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죠.
"제가 잃어버린 건 단순히 다이어리 한 권이 아니라 지난 3년간 제가 살아온 시간과 기억이었습니다. "
그렇게 허무하게 다이어리를 잃어버린 후 두 달가량은 마냥 넋 놓고 아무런 생각 없이 지냈지요. 그러다 복학 준비와 함께 집을 떠날 준비를 하면서 다시 다이어리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하루'를 다이어리에 담아내기 시작했지요. 1999년 3월 1일부터 다시 시작한 다이어리 생활은 2011년 2월까지 쭈욱 이어졌습니다.
아무 기록 없이 비어있는 날은 말 그대로 지극히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기록이 무성의하게 띄엄띄엄 남아있거나 아예 통째로 비어있는 기간이 길었던 시간은 제 문제에 갇혀 스스로를 힘들게 하던 어리석은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뭔가 적혀있는 기록은 제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날 일을 알려주거나 또렷하게 재생시켜 주는 좋은 추억 재생 플레이어입니다.
2011년 봄에 디지털카메라를 새로 구입하고 매일매일 갖고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다이어리 생활은 막을 내렸습니다. 굳이 글로 기록을 남기지 않아도 폴더 이름과 사진만으로도 순간을 회상하고 확인할 수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다이어리 쓰는 일을 멈췄습니다. 그렇게 손글씨로 생활을 기록하는 아날로그 방식 대신 사진과 노트북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제 일상 저장소가 바뀐 순간입니다.
"다이어리에서 사진으로 일상 저장소가 바뀐 순간입니다. "
얼마 전 책장에 꽂혀 있던 옛 다이어리를 끄집어내어 지난 시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노트북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사진도 쭉 훑어보았지요. 그리 대단한 일상은 아니지만 그렇게나마 남긴 기록 덕분에 제 삶을 기억하지 못한 채 흘려보내지 않고 붙잡아 둘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의미가 있는 순간을 글로 풀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제 옆에는 카메라가 있습니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싶어서입니다. 그렇게 그 순간을 맞이하는 제 생각과 느낌을 담아둔 후 다시 글로 풀어내는 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려 합니다.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