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닐거라는 착각
‘데스크 머리 쪼개고 싶다’, ‘내꿈은 기렉시트’, ‘제발 우리 공장좀’, ‘퇴사하면 제보각’
기자임을 인증해야 들어갈 수 있는 기자 익명 단톡방이 있다. 이 단톡방에 있는 기자들의 닉네임들이다. 비판하는 것이 업의 본질과 닿아있어서일까. 익명 단톡방의 다른 기자들의 닉네임은 시니컬하기 그지없다. 이런 닉네임들을 통해 기자들이 자신의 상사와 직장에 얼마나 불만족하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현시대의 미디어 환경에서 집이 엄청 부유해서 자아실현을 위해 기자를 하는 게 아니라면, 업무 강도나 사내문화 등을 감안했을 때 기자라는 직업의 만족도가 높기는 쉽지 않다. 기자 단톡방에 있다 보면 업계 최대 규모 매체에서도 인력이 수시로 빠져나가는 소식이 들려온다. 조선·중앙·동아와 한겨레·경향 중 한 매체는 2010년대 후반 공채로 입사한 기자가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한창 필드에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는 5~7년 차 기자들이 이탈하는 셈이다.
이 같은 젊은 기자들의 이탈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올해 초 보도된 연합뉴스 저연차 기자들 줄퇴사사건이다.
“선배들께서 직시하셔야 할 것은 이 회사가 더는 좋은 회사가 아니라는 거다. 조직문화로 보나 처우로 보나 업계 최고가 아니고, 좋은 회사는 더더욱 아니다.”
올해 1월 31일 연합뉴스 노조 홈페이지 사원게시판에 올라온 한 퇴사자의 글로 연합뉴스 내부는 한동안 들썩였다. 3년간 연합뉴스 기자로 최선을 다해 일하며 퇴사까지 결심하게 된 이유를 적은 글이었다. 해당 글에는 “폭언, 욕설, 인격모독 등 전근대적인 직장 내 괴롭힘 문화가 만연”하다며 “정신과 약을 처방받은 동료들도 있고, 괴롭힘으로 인해 우울증을 진단받았다는 이야기를 여럿에게 들었다”고 적혀있었다.
실제로 2022년부터 올해 5월까지 연합뉴스의 차장급 미만 퇴사자가 22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5월까지만 해도 8명이 떠났고, 이중 5년 차 이하가 5명이었다고 한다. 이는 연합뉴스가 언론계에서 가지는 위상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연합뉴스는 국내 최대규모의 언론사로 법적인 요건에 따라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로 지정된 언론사다. 또한 성향 자체도 중립을 표방하고, 국가의 지원금을 받는 만큼 공기업과 같이 안정적인 느낌도 있어 언론인을 꿈꾸는 사람에게 입사기회가 주어지면 대다수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런 언론인 지망생들의 꿈의 직장 중 한 곳인 연합뉴스에서 젊은 기자들의 대거 퇴직 사태가 발생했고, 퇴사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원인이 ▲위기관리시스템 부족 ▲과도한 업무 부담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해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 등 조직문화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주를 이룬다. 사람으로 돌아가는 업계가 사람을 챙기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밖에 ▲열악한 처우 ▲단순 업무 반복 ▲잦은 인사이동 등이 거론됐다.
국내 최대 언론사 조차 현실이 이렇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언론사를 ‘공장’이라는 은어로 부른다. 비슷한 기사를 공장처럼 찍어낸다고 해서 부르는, 일종의 비하표현이다.
실제로 네이버 뉴스를 보면 비슷한 기사가 수십 개가 묶여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보도자료를 조금만 손봐 작성하거나 연합뉴스 등 통신사의 기사를 살짝 수정해서 기사를 전송하는 경우다. 직접 취재를 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연합뉴스 등 통신사와 제휴를 맺고 기자를 베껴 그대로 전송하거나, 살짝만 바꿔서 전송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업계용어로 ‘우라까이’라고 한다. 기사 쓰기 테크닉을 조금만 배운다면 보도자료 처리나 우라까이 기사를 하나 제작하는데 10분이면 충분하다. 이런 식으로 기자들은 회사의 지시에 따라 기사를 찍어낸다.
직접 발로 뛰고 취재해서 의미 있는 기사를 작성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자가 되었지만, 일정량의 콘텐츠를 충족시켜야 하는 공장의 요구에 맞춰 기사를 작성하다 보면 제대로 된 취재나 기사작성은 업무 외 시간에 하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이런 경우 큰 회사를 제외한 대다수의 언론사에서 야근수당 같은 건 없다.(나도 그랬다)
반면 기자생활을 시작하기 전 가장 면접을 본 몇몇 작은 언론사에서 “초봉은 2500에 수습기간엔 90%의 임금이 지급되고, 야근수당 같은 건 없다”고 말하거나, “연봉 2500에 퇴직금이 포함되어 있다”거나 하는 괴랄한 이야기를 실제로 들은 적은 있다. 심지어 2001년이 아니라 2021년이었다. 슬프게도 이런게 대다수 작은 인터넷 언론사의 현실이다.
또한 기자는 ‘박봉에 고생하는 게 당연하고 사명감으로 일한다’는 인식은 언론계에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듯하다. 3년 차가 돼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본 나름 큰 회사에서도 “기자는 3D직업이다. 박봉에 일이 빡세 사명감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 거다”라는 말을 면접을 진행하며 들었다. 면접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그 기자의 표정에는 자부심과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 기자라는 자신의 ‘직업’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단순히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나 스탠스가 내 눈에는 멋있기보다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자신이 상정한 어떤 '기자'라는 타이틀의 이미지에 상당히 의존하는 듯 보였다.
세상은 점점 투명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일부가 정보를 독식했다면, 지금은 정보의 공개범위도 확산속도도 엄청나게 빨라지고 있다. 그리고 이는 취업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자는 이제 취준생들이 기피하는 직업이 됐다. 언론사의 수직적인 조직문화와 나쁜 워라밸 등을 단순히 ‘사명감’이나 ‘자부심’만으로 대체하기에 젊은 사람들은 훨씬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다. 과거에는 기자가 일은 빡세도 대우받고 급여도 많은 ‘전문직’ 대우를 받았다면, 지금은 일은 많은데 돈도 못 벌고 조직문화는 수직적인 ‘안 좋은 회사 다니는 직장인’이라는 인식이 더 가깝다.
실제로도 정말 좋은 소수의 몇몇 매체를 제외한다면 대다수의 인터넷 매체에서는 후자의 인식에 더 부합한다. 개인적으로 나도 작은 언론사 근무하던 시절 ‘매력적인 동료나 지원자’는 거의 보지 못했고, 괜찮다 싶은 사람이 들어오면 금방 회사를 떠나갔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회사는 지원자가 있다면 채용하기 급급했다.
좋지 않은 근로환경의 회사에서 일한다는 건 자연스럽게 배울 것 없는 선배, 가까워지고 싶지 않은 동료들과 함께한다는 의미가 된다. 나의 내일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걱정하며 회사생활을 하게 된다. 이는 전적으로 언론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경영진을 비롯한 기성세대의 책임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들이 자신의 권위와 이익을 챙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후배들로부터 이런 인식이 형성된 거라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 피해를 보는 건 좋은 동료는 떠나고, 좋은 후배들은 들어오지 않는 아랫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공장장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요즘 애들이 문제’라며 여전히 남 탓만 하고 있지 않냐고. 과거 좋은 시절을 누리고, 현 직원들에겐 어떤 직장에서 근무하게 하고 있냐고. 항상 함께하는 부하직원이나 후배들은 정말 당신을 좋아하냐고. 혹시 위선자 소리를 듣지는 않냐고.
당신네 공장은 안녕하시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