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와 노들섬 이야기
2019년 9월의 오후였다. 동대문 역 근처에서 볼 일을 보고, 나무벤치에 홀로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평소에는 좀처럼 울리지 않던 핸드폰이 오늘따라 까랑까랑한 소리를 내며 울어댔다. 나는 우는 아이를 달래듯 조심스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검은색 화면에 하얀색 숫자가 보였다. 모르는 번호였다. 070이 아닌, 010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스팸전화는 아닌 듯싶었다.
- 누굴까? 전화를 건 사람이......
가끔씩 생경한 번호로 전화가 오면, 그때마다 나는 묘한 긴장감과 호기심이 느꼈다. 그 순간도 그랬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방에 대한 경계심과 어쩌면 반가운 소식은 아닐까? 하는 설렘을 동시에 느꼈다. 확률은 반반이었고, 나는 이 50%의 확률을 긍정에 걸기로 했다.
-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진영 작가님이신가요?
수화기 너머로 차분하고 달가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 일상작가로 선정되어 연락드렸습니다!!
- 어?...... 아.... 네?... 그렇군요.
- 어... 어.. 축하드립니다!
‘선정’이라는 좋은 소식을 알리는 전화에 이렇듯 차분한 대답은 의외였을까. 수화기 너머로 당혹스러움이 담긴 멋쩍은 웃음이 느껴졌다.
전화가 오기 몇 주 전, 나는 글 쓰는 플랫폼 '브런치'에서 일상작가를 뽑는다는 공고문을 보았다. 일상작가로 선정된 사람들에게는 한강 뷰의 작업실을 제공했는데,
그 공간은 노들섬에 있는 ‘노들서가’라는 공간이었다. 노들서가 주변에는 한강이 있었고, 풀과 나무 그리고 고요함이 있었다. 도심과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아예 바깥으로 밀려나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에 왠지 모를 친숙함과 동지애를 느꼈다. 아무튼, 그곳은 창작을 하기에 너무 좋은 공간이었다. 신청서를 쓰면서도 사실 붙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서울에는 끼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으니까. 평범한 재주를 가진 내게도 과연 그런 기회가 가닿을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의 나는 직업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학교에 있으면 선생님, 병원에 있으면 의사 혹은, 간호사. 직장에 있으면 직장인이라 불린다. 그렇다면 그 어떤 공간에도 소속됨 없이, 집과 카페를 전전하는 나는 도대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렇게 '공간'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풍선처럼 커다랗게 상승할 때 즈음, 시기적절하게 ‘선정’이라는 좋은 소식이 전해 온 것이다.
솔직히 밝히자면, 나의 첫 대답은 차분함이 아니었다. 놀라움과 당혹스러움의 연속이었을 뿐.
그렇게 그곳에서, 정말 정말 좋은 곳에서 일상작가로 시간을 보냈다. 매일 아침 안암역에서 출발해 6호선 지하철을 타고, 삼각지 역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탔다. 노들섬으로 가는 지하철의 북적임과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일상이 좋았고, 그 시간이 설렜다.
‘공간’을 얻어 좋았고, ‘동료’를 만나 더 좋았다. 작업실에 앉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좋았다. 브런치를 통해 얻은 기회로 그렇게 인생의 각도가 조금씩 변했다.
요즘은 브런치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연재 형식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화려하고 완벽한 솜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작업물을 올린다.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벼우나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들로 알알이 채워가면서. 오늘도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참고 : 브런치 일상작가 공모는 [브런치 x 노들서가] 주최로, 활동은 1기 2019년 10월~12월/ 2기 : 2020년 1월~3월 동안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