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날씨가 흐려도 오늘은 꼭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엊그제 서점 측으로부터 입고해 둔 책이 모두 팔려 추가 입고를 바란다는 메일을 받았다. 독립 출판 서점이라 입고한 양이 아주 적긴 했지만, 내겐 아주 크고 감사한 일이었다. 우체국에 들러 택배를 보내고 입구에 세워 둔 우산을 펼쳤다. 투명한 우산 너머 하늘에는 구름이 한층 더 짙어져 있었다. 아마도 비가 더 많이 올 모양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는 작은 개울이 하나 있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졸졸 흐르다가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에는 물살이 폭포수처럼 거셌다. 이런 날에는 소금쟁이와 물방개처럼 연약한 것들은 다 아래로 흘러 사라져 버렸다. 나는 다리 위에 서서 멍하니 거센 물결을 내려다봤다.
내가 사는 빌라 앞 화단에는 1층 정도의 높이를 가진 나무 두 그루가 심겨 있었다. 크기가 작아 새들의 서식처가 되진 못했지만, 낮이면 나뭇가지 틈 사이로 새들의 지저귐이 들리곤 했다. 개울을 지나 빌라 입구로 들어오는 동안 비바람이 더 거세졌다. 옷은 금세 다 젖었고, 우산은 제 역할을 잃은 지 오래였다. 입고 나갔던 옷에서 까슬까슬한 부분이 다 사라질 때쯤 빌라 안에 들어섰다. 우산을 접어 빗물을 털어내고, 우체통에 든 신문을 챙겼다. 그러고 나서 계단을 오르는데, 작은 빗방울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2층 계단에는 작은 창문 하나가 열려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윙윙’ 소리가 났는데, 그럴 때마다 빗물이 한 웅큼씩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열린 창문을 닫으려 다가갔다. 아래를 보니 이미 흥건해진 대리석 바닥 위에는 빗물과 떨어진 나뭇잎 몇 개, 그리고 작은 새 한 마리가 덩그러니 누워있었다.
무릎을 굽혀 반듯하게 누워있는 새를 바라봤다. 자세히 보니 연한 갈색 털에 검은 부리를 가진 아기 참새였다. 눈을 감고 있었고, 움직임은 없었다. 나는 참새의 다리가 이렇게 연약한지 그날 처음 알았다. 그때였다. 나뭇가지처럼 굳어 있던 다리가 살짝 움직였다. 그 모습은 마치 도와달라는 수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거센 물결에 저항하는 하나의 몸부림처럼 보이기도 했다.
두꺼운 휴지 더미로 살며시 참새를 감싸 집으로 데려왔다. 그러고는 택배 상자를 하나 찢어, 간단한 집을 만들었다. 병뚜껑에는 물을 담아 두고, 먹이를 검색해 먹을 만한 것을 쟁여두었다. 이불로 쓸만한 것은 뭘까 생각하다가, 가볍고 보드라운 휴지를 뽑아 켜켜이 쌓아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야.”
“이제 남은 건 네 몫이야.”
젖은 외투를 벗어 두고, 욕실로 들어갔다. 뜨끈한 물을 틀어 몸을 데웠다. 문득, 사람의 손을 타면 어미가 데려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것이 새인지, 다른 동물인지는 모르겠으나 배려의 결괏값이 매번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종이 상자 안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자를 열어보니 누워있던 참새가 상자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퍼덕거리며 날아오를 것만 같았다. 뜨끈한 안도감이 들었다. 적어도 내 선택의 결과가 죽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의 일은, 이후의 삶이 결정할 몫이라 여겼다.
“새가 죽어 있는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자 안을 신나게 돌아다니더니만.”
노곤해진 몸을 뉘어 잠깐 눈을 붙인 사이 부모님의 대화 소리가 방 안으로 스몄다. 눈이 번쩍 떠졌다. 달려가 상자 안을 봤다. 참새가 가지런히 멈춰있었다. 계단에서 처음 봤을 때의 멈춤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건 ‘죽음’이었다. 인정할 수가 없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토록 힘차게 돌아다녔는데. 도대체 왜 죽은 걸까? 늘 그렇듯 마지막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창문 밖에는 비가 멈추고 해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참새를 묻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주변에도 적당한 장소는 있었지만, 적어도 차갑지 않은 곳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산을 올랐다. 물과 가방, 모종삽, 그리고 보드라운 휴지로 감싼 참새를 챙겼다. 산 중턱쯤에 이르렀을 때, 처음 보는 보라색 꽃을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내리쬐는 햇볕 사이로 딱 한 송이만 피어있었다. 이곳에 참새를 묻기로 했다. 햇볕과 꽃이 있으니, 이곳에 묻히면 적어도 혼자는 아니었다.
가방을 열어 모종삽을 꺼냈다. 너무 얕게 묻으면 산짐승이 물어갈까 봐, 또 너무 깊게 파면 훨훨 날아가지 못할까 봐. 고심 끝에 적당한 깊이를 팠다. 참새를 묻어주고, 곧장 산에서 내려왔다. 인사는 하지 않았다. 이름도 지어주지 못할 만큼 인연은 짧으니까. 참새를 묻고 내려오면서, 보라색 꽃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이름 모를 그 꽃에 이름 하나를 붙였다. ‘참새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