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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 [글/그림]

by 진영

달리기



어젯밤은 산책길을 걷지 않고, 뛰었다. 심장 아래 깊숙한 곳에서 시작된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렇게 달려본 게 언제였나 생각해 보니, 너무 까마득해서 생각하기를 멈췄다. 손을 휘젓고, 발을 내디딜 때마다 입에서는 거친 숨소리가 연신 뿜어져 나왔다. 여름이라 입김이 보이진 않지만, 아마도 숨이 눈에 보였다면 거대한 안개였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요즘 정적인 삶을 살았다. 아니, 꽤 오랫동안 정적이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가끔은 이런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고요함을 망친다거나, 평화를 깨뜨린다거나 하는 그런 투정이 아니다. 그저, 새로운 물결이 필요한 순간이 왔음을 온몸으로 직감했을 뿐이었다.


걷다보면 좁다란 골목 끝에는 매번 기다란 아스팔트 길이 나왔다. 달리면 그 시간이 조금은 짧아질까 싶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늘따라 달이 참 밝다. 바람도 선선해서 계절이 변하는 경계에 선 것 같다. 이젠 한 뼘 더 자라 호루라기 없이도 잘 뛴다. 달리기 전에 신발 끈을 한 번 더 단단히 조이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천천히 달린다. 오늘 밤은 조금 더 넓은 곳을 달릴 듯한 기분이 든다.



달리기(2025).created by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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