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끄적거림

5년 넘게 사용했던 핸드폰의 수명이 끝나간다.

조금만 더 버텨주겠니?

by 진영


5년 넘게 사용했던
핸드폰의 수명이 끝나간다.


2014년 초, 충전을 하던 내 폰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운명을 달리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찾아온 죽음이라, 미처 사진과 메모를 백업하지 못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쌓아온 나의 추억이 고스란히 증발해 사라져 버렸다.


휴대폰은 다시 구매할 수 있지만, 지나간 추억은 다시 구매할 수 없기에 나는 AS라는 심폐소생술을 통해 휴대폰의 수명을 조금이나마 더 늘리고 싶었다.


내 휴대폰은 “HTC” 라는 회사의 “evo”라는 기종이었다.휴대폰이 고장 났을 때는 “HTC” 회사가 한국에서 철수를 하고 난 이후였기 때문에 수리는 사설업체에서 해야 했고, 그 비용은 꽤나 비쌌다. 당시에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가 조금 벅차서 훗날 내가 돈을 많이 벌면 그때 수리를 해야겠다고 생각 했다.


고장난 휴대폰을 서랍장에 넣어두고, 새로 구매한 휴대폰이 2014년에 산 LG의 g pro2 다. 5년 정도 쓰다 보니, 이제 이 녀석도 슬슬 떠나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배터리가 100%에서 0%가 되는 주기가 짧아지고, 예비 배터리 2개와 보조배터리 2개를 들고 다녀도, 버겁다.


진작에 휴대폰을 바꿀 수 있었는데도, 바꾸지 않은 이유는 조금 느려지고, 낡았으나 이 녀석과 내가 쌓은 5년간의 의리때문이다. 휴대폰의 수명이 끝나서 더이상 켜지지가 않을 때, 그때 자연스럽게 보내주고 싶었다.


나는 전자제품을 좋아한다. 보통 전자제품을 살 때 가장 최신 제품을 산 다음, 고장이 나서 못쓸 때까지 쓰는 편이다. 미련이 많은 성격 탓일까. 수명이 다한 전자 제품은 버리지 못하고, 늘 보관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고향 집에는 나의 휴대폰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휴대폰까지 모두 보관하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사용한 기계는 마치 하나의 추억 같아서, 쉽게 버리지 못하겠다.

모아 둔 가족들의 핸드폰.

핸드폰이 오래되다 보니 생기는 더 큰 문제는 요즘 나오는 최신 어플을 설치하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카톡 이모티콘도 가끔 렉이 걸리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발열현상도 더 심해졌다. 조금만 휴대폰을 시용해도 금세 뜨거워진다. 제 몸을 태워, 내 생활에 조금이라도 더 유익함을 주려하는 것 같아 기특하면서도 약간 겁이 난다. (설마 폭발하진 않겠지?)


시간이 흘러 나이가 들면, 우리도 젊은 시절 쌓아온 명성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대신하기 위해 찾아온 새로운 사람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기계든 사람이든 그런 것 같다. 조금 슬프긴 하지만, 그것도 그 나름의 낭만이 있다. 양초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힌 후, 녹아 흘러 사라지더라도 양초를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것은 양초의 낭만이다. 누군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을 불쌍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것은 그들의 낭만이다. 최신폰으로 추앙받다가 어느새 늙어버린 나의 휴대폰에게 나는 말한다.


물론 제 역할을 충분히 다했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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