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끄적거림

의심.

모든 것을 의심하라.

by 진영

지하철에 앉아있으니 누군가 나의 곁에 다가와
a4용지를 반 정도 접어 자른, 작은 종이 하나를 무릎 위에 올려두고 사라졌다.


무릎 위에 덩그러니 놓인 종이를 집지 않고, 시선을 아래로 떨구어 내용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글에는 글쓴이의 어려운 가정환경과 더불어 시민들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여느 시민들처럼 가볍지만, 무거운 이 종이가 얼른 다시 제 주인에게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지하철 안은 고요했다. 평소에도 고요했지만, 지금의 고요함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고요함이었다.

‘고요함’이라는 단어보다는 ‘정적이 흘렀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했다. 지하철의 정적은 종이의 주인이 종이를 다시 거두어 가면서

끝이 났다.


20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시골에서 살았다. 평범한 삶이었다. 우리 동네에는 돈을 달라고 앉아 있는 사람도, 길을 지나가다가 인상이 좋아 보인다며 쫒아오는 사람도, 터미널에서 신문지를 깔고 자는 사람도 없었다. (없었는지, 내가 신경쓰지 않아서 보지 못한 것인지 정확하게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수학여행으로 서울에 올라오거나, 친지들을 만나기 위해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제야 처음 그들과 마주했다. 때의 나는 돈 통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주머니 속의 동전을 탈탈 털어 모두 꺼내어 주었다. 또한 2인 1조가 되어 나를 둘러싸고 인상이 좋아 보인다고 말을 건네 오는 이들에게 붙잡혀 30분이고 1시간이고 끝이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실제로 그들을 따라간 적은 없지만, 냉정하게 그들을 뿌리치고 지나쳐갈 단호함 그땐 없었다.


서울에는 이런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모르는 내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시골 인심보다 서울 인심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인상이 좋다며 아낌없는 칭찬을 건네는 이들이 이곳에는 정말 너무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내 인상이 정말 좋아서 이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거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지나가고 난 후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인상이 좋다고 말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크게 실망했다.


그들은 내게 실망감을 줬어!


도시에서의 경험이 쌓일수록 생기는 것은 바로 ‘의심’이었다. 의심이라는 단어는 단어 자체에서부터 뭔가 부정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겨진다. “괜한 의심을 했나?”라는 말처럼 의심을 한 후, 그 의심이 결국 사실이 아님으로 판별 나면 우리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 사람을 믿지 못했다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 그러나 이 죄책감은 잠시며, 의심하지 않아서 생기는 피해는 영원하다.


대부분의 사기는 이 죄책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들의 요구에 응하면서 시작된다. 나는 다행히 큰 값을 치르지 않으며, 다양한 사기를 당했다. 적은 돈으로 인생공부를 했다.


고향 선배라고 접근해온 사람은 보이스 피싱범이었고, 한 달 동안 같이 사냥을 다닌 게임 친구는 잠시만 껴본다며 가져간 레어템을 들고 사라졌다. 다행히(?) 나는 10만 원이 넘지 않는 소액 사기만 꽤 당했다.(보이스 피싱 사건은 이야기가 길어서 다음에 적도록 하겠다.) 나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깨달았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


이것이 코가 베여가며 도시에서 배운 첫 번째 교훈이다.

예전 같았으면 감정에 호소하면 대부분 나의 마음은 흔들렸다. 지금도 흔들리긴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그러고 보면 몇몇 사기꾼으로 인해 피해는 늘 진실한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


지하철에서 종이를 나눠 준 그 사람의 사연은 과연

진실이었을까?


똑똑똑. created by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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