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에 만난 사람들.
대학교 기숙사에 살 때, 나는 밤이면 늘 산책을 나섰다. 동기들이 모두 집을 가고 없는 주말에는 혼자 산책을 했다. 나의 집은 시외버스를 타고 4시간 30분이 걸리는 아주 먼 곳이었기 때문에 주말에도 나는 늘 학교에 남아있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주말에 홀로 기숙사에 남아 있다가 밤에 산책을 나섰다. 그렇게 혼자 산책 길을 걷고 있는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한분과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한분이 갑작스레 나타나 내 앞을 막아섰다.
인상이 참 좋으세요!
산책로가 어두워 내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꽤 캄캄했는데, 내 인상을 단번에 판단하셨다. (얼굴에서 광채라도 났던 걸까.) 도시에 살게 되면서 이런 분들은 정말 수도 없이 만나왔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날따라 혼자 걷는 산책 길이 조금 지루했고, 나는 호기심이 꽤 강한 편이라 평소 궁금했던 것들을 몇 가지 물어보고 싶었다. (이 일을 왜 하시는지, 정말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는지... 등등.)
길을 막아섰던 두 여성분 중 한 분이 리드를 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셨고, 나머지 한 분은 추임새를 넣으셨다. 그렇게 몇 분 정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내신 후에 내게 말했다.
맥도널드에 가서 음료 한잔 베푸세요.
이분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너무 잘 들어주는 내 모습을 보며, 아마도 지레짐작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분명, 우리를 따라갈 것이다. 이 사람은 분명 우리에게 음료를 베풀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분들의 말을 너무 잘 들어주었고, 궁금한 점도 물어보며 만담을 나눴다. 그러나 따라갈 듯하면서도 나는 따라가지 않았다. 그저 궁금했던 것들을 계속 물어봤다.
(1) 왜 이일을 하시는 건가요?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왜 이 일을 하시는 걸까. 나의 질문에 30대 초반으로 보이시는 전도자(?)께서는 내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말씀해 주셨다. (참고로 중학교 시절 또래상담부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그분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니, 그분이 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 조금은 풀렸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리의 삶과는 조금 달랐다.
(2) 정말 따라가는 사람이 있나요?
나는 물었다. 정말 이렇게 이야기하시면 따라가는 사람이 있나요?.
그분이 말했다. “가끔 있어요.”
대략 40여분 동안 대화를 나누며 궁금한 것을 모두 해소한 나는 이제 내 갈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일어났다.
지나가던 술 취한 아저씨가 이리로 다가오시더니 그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거 순진한 학생한테 지금 뭐하는 짓이요?
그러자 두 사람이 아저씨를 향해 소리쳤다. “상관하지 마시고, 갈길 가세요!”
순식간에 2대 1의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이제 막 갈려던 찰나였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나는 옆에 서서 지켜봤다.
말싸움이 시작되더니 갑자기 아저씨께서 들고 있던 비닐봉지로 30대 전도자(?)의 얼굴을 내리쳤다. (짐작컨대 그 봉투에는 아마 마른 안주거리가 들어있었으리라.)
상황이 점점 더 커지는 듯하더니 이내 식어 들면서 아저씨는 제 갈길을 가셨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서 내가 뭔가 말릴 틈도 없었다. 얼굴을 맞아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전도자는 이내 고개를 다시 들더니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말했다.
음료 하나 베푸세요.
내가 물었다. "얼굴은 괜찮으세요?"
전도자가 대답했다. “네, 괜찮아요.”, “음료 하나 베푸세요.”
얼굴을 얻어 맞고 난 직후 곧장 내게 다가와 음료를 베풀라고 말하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얼굴을 부여잡고 말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또한
이런 상황에서도 음료를 챙기고자 하는 그 마음이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나는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 2잔을 베풀기로 했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두 분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비싼 음료와 빵을 집어 드셨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빵도 좀 베푸세요.
나는 대답했다. “ 네, 드세요.”
두 사람에게 빵과 음료를 베풀었다. 두 사람은 빵과 음료를 맛있게 드셨다. 그러면서도 직업정신을 버리지 않고, 내게 마지막으로 말을 건넸다.
다음에도 이런 말을 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꼭 더 들어보세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새로운 타깃을 찾아 길을 나섰고, 나는 가던 산책 길을 계속 걸어갔다.
20살 이전까지 시골에서 살았던 내 삶은 평범했는데, 도시에 살게 된 20살 이후의 삶은 조금 특이한 경험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보이스 피싱범을 만난 사건, 도둑을 잡은 사건, 등등... 이 이야기는 다음에 또 적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