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끄적거림

친구에게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을 때의 반응.

너 그림 잘 못 그리잖아?

by 진영


대학시절 화학을 전공했다. 초, 중, 고, 친구들과 대학교 친구들 중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작가’라는 직업을 갖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나조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나의 근황에 대해 알게 되면 대부분 의아해하면서 내게 묻는다. “너 그림 잘 못 그리잖아?”, 혹은 “직업을 할 정도로 네가 그림을 잘 그렸던가?”라는 반응이다.


그들에게 지금 당장 내 실력을 증명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들은 잘 몰랐겠지만, 학창 시절 나는 그림으로 상을 꽤 받았었다. 자랑을 안 해서 그렇지. 미술 과목도 늘 우수한 성적이었다.) 나의 실력을 검증하겠다는 분위기가 이어지면, 나는 내가 그린 것 중에 제법 잘 그린 것을 친구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들의 의심을 잠재우기 위해서. (내가 그림을 매우 잘 그리는 편은 아니지만, 못 그리지 않냐는 물음에는 늘 뭔가 발끈하게 된다.)



최후의 만찬. created by 진영.


‘최후의 만찬’을 보여 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의심이 잠재워진다. 초창기에는 조금 잘 그린 것처럼 보이는 그림들을 꽤 그렸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정말 노동이다. 그리고 뭔가 빼곡하게 그린 그림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가사 없는 배경음악, 여백이 많은 그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내 작품을 보면 지나칠 정도로 여백이 많다.



하늘이 파랗게 물들면, 나는 너를 떠올린다. created by 진영.



바라면 닿을까. created by 진영.

정말 극단적으로 텅텅 비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텅텅 빈 그림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대부분 그림 실력을 의심해서, 아주 복잡하고, 어렵고 , 누가 봐도 멋진 그림을 보여줘야 의심을 지울 수 있다. 그림을 그린다고 말하면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일이 많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제는 그냥 근황을 물으면 대충 얼버무린다.


-요즘 어떻게 지내니?
-응,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잘 지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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