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두 번째 터닝포인트를 맞이했다.
나는 매년 연말이 되면, 그 해를 되돌아보며 늘 후회를 하곤 했다.
과거는 언제나 늘 아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생각보다 쿨하지 못한 성격 탓인지
자연스레 넘어가는 달력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항상 애원했다.
“안돼! 제발 가지 마! 제 바알~!”
참 무심하게도 시간은 이런 나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쳐다봐 주지 않는다.
늘 냉정하고, 단호하다.
“응~안돼! 돌아가!”
“네 시간 네가 그렇게 쓴 거야!”
“자업자득이야!”
올해도 과연 나는 울부짖으며, 시간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을 것인가?
작년에 친 제야의 종소리가 아직도 내 귀에 선명한데, 내일이면 벌써 2019년이 끝이 난다.
2020년을 고작 하루 앞 둔 지금 내 마음 상태는 어떻냐고? 아주 덤덤하다.
버선발로 대문 밖까지 쫓아가 2019년에게 잘 가라고 인사해줄 만큼 덤덤하다.
올해는 31에서 1로 바뀌는 그 숫자를 미련 없이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다.
매년 울부짖던 내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바로 “노들섬” 때문이다.
나는 올해 10월 초부터 노들섬에 있는 “노들서가”에서 집필실 이용 작가로 3개월간 활동했다.
1월부터 10월까지 쌓여진 올해의 아쉬움들은 이미 노들서가에 다니며 모두 지웠고, 해소했다.
노들서가라는 존재가 내게 그렇다.
단순히 집필실이라는 공간을 넘어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노들서가”는 노들섬에 위치 한 책방이다. 1층에는 다양한 책들을 판매하고 있고, 2층에는 집필실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2층에서 노들서가와 브런치의 기획으로 선발된 16명의 작가들과 함께 집필실을 이용했다.
작가들은 작품 활동과 더불어 3개월 동안 각자 1개의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했다.
작가마다 특색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진행했고, 참여해 주신 많은 시민분들과 즐겁게 소통했다.
얼마나 즐거웠냐고? 서가에서 진행한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다 참여 했을만큼 즐거웠다.
노들서가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은 마치 소극장에서 진행하는 연극, 혹은 인디밴드의 공연 같았다. 소규모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좀 더 가까이에서
작가분들의 강연, 혹은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진행자와 참여자 간의 거리감이 멀지 않아서 더 좋았다.
시민 참여 프로그램의 경우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이 무척 즐거웠다.
집필실을 이용하는 작가들은 매달 집필실을 이용한 댓가로 “글세”를 낸다. 이용료로 돈이 아닌, 글을 지불하는 것. 그것이 “글세”다.
이용료로 “글세”를 낸다는 아이디어부터 매우 참신했고, 누군가에게 내가 만든 창작물의 가치를 인정 받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이렇게 제출한 “글세”는 서가에 게시되어, 오고 가는 시민분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10월 초에 시작한 3개월간의 일상 작가 일정이 12월 27일에 열린 “작가 네트워킹”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마지막 “작가 네트워킹”에서는 일상 작가로 참여한 모든 작가분들과 서가 매니저분들이 함께 모여 일정을 진행했다.
각자 3개월간 일상 작가로 활동하면서 느낀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이벤트도 진행되었는데, 미리 준비해 온 선물들을 모아 뽑기 형식으로 서로 교환했다.
나는 내 그림을 액자에 넣어 선물로 만들었는데, “수진 작가”님이 뽑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글지마”작가님의 여행 포스터와 사진을 뽑았다.
노들서가의 마지막 네트워킹에서 나는 “출섬왕”이라는 상을 받았다. 3개월간 노들섬에서 가장 많은 출석 일수를 채운 사람에게 주는 상이 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3개월간 거의 모든 날을 빠지지 않고 출석했다. 심지어 주말에도 자주 나왔다. 나는 노들서가가 좋았다. 좋으니까 자주 왔고, 자주 오니 자연스레 출석왕이 되었다.
노들서가의 일상작가로 선정되어 활동하게 된 3개월은 내 인생에 있어 두 번째 터닝포인트다.
꿈이 없던 취업준비생 시절, 나에게 처음 작가라는 꿈을 꾸게 해 준 “신도림 예술공간 고리”가
인생의 첫 번째 터닝포인트, 그리고 작가라는 꿈을 지속하게 해 준 “노들서가” 가 내게는 두 번째 터닝포인트다.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저 사라져 가는 하루가 아니라, 쌓여져 가는 하루였다.
작가라는 길을 2년남짓 걸어왔다. 전시에 참여할 때나, 상을 받을 때 많은 분들이 나를 작가라고 불러 주신다.
그러나 정작 내 자신은 나를 작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내게 “작가”라는 이름은 직업이기보다, 내가 성취해야 할 하나의 도달점이었다.
마치 정복 해야만 인정 받을 수 있는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보통 자기가 소속된 공간으로 설명된다. 직장을 다니면 회사원, 절에 있으면 스님, 병원에 있으면 의사 혹은 간호사.
그런 면에서 보면 일정한 공간 없이, 카페 혹은 집에서 작업을 하는 내게 작가라는 직업은 만질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그런 투명한 존재였다.
그렇게 작가에 대한 무거움과 공허감이 길어졌을 때 즈음, 시기 적절하게 나는 노들 서가의 집필실 이용 작가로 선정되었다. 이곳에서 내 삶은 크게 변했다.
작가에 대한 생각과 작품에 대한 마음가짐이 변했고, 심지어 나 자신조차 변했다.
노들 서가는 나의 거주지에서 약 3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철 1번, 버스 1번을 타야 도착하는 위치다.
어쩌면 조금 복잡하고, 어쩌면 조금 긴 그 시간들 조차 나는 늘 좋았고, 늘 설렜다.
3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노들섬은 내게 마음의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노들섬을 다니면서부터는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에 대한 결과가 좋지 않아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일상작가가 되기 전에는 작업한 결과물에 대한 성과가 좋지 않으면 허무함과 아쉬움이 크게 왔는데, 집필실을 이용하면서 부터는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마치 든든한 뒷배를 둔 느낌이랄까. 실패해도 괜찮았다. 그래서 서가를 다니면서부터는 창작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다.
“실패를 해도 노들섬에 가서 또 작업하면 되지, 다른 기회가 또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지금 까지는 “작가”라는 칭호를 결과로 얻어 왔는데, 그 부담감에서 벗어나니 결과에 대한 집착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3개월간 노들 서가는 내게 단순히 작업을 하는 공간을 넘어, 나를 변화시킨 공간이 되어주었다.
노들 서가에 있으면서 좋은 일도 많이 생겼다.
상반기에 떨어진 네이버 창작지원 일러스트 연재에 당선되어, 12월부터 목요일마다 일러스트를 연재하게 됐다.
덕분에 네이버 행사에도 초대되어, 잠시나마 “인싸”가 되어 보기도 했다.
일상작가로 활동하기 전에는 노들섬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는데,
3개월 동안 꽤 정이 들었는지 이제는 이곳이 마치 고향같은 느낌 마저 든다.
만약 시간이 흘러 누군가가 내게 노들섬, 노들 서가에서 보낸 시간이 어땠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함 없이 말할 것 같다.
"나에게 노들서가는 늘 맑음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