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끄적거림

그 아저씨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호구였을까

차비 좀 빌려주세요.

by 진영
그 아저씨에게 나는 과연 좋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아저씨가 만난 많은 호구들 중 한 명이었을까?


2019년 12월 27일 작품 작업을 하는 집필실의 마지막 작가 네트워킹이 예정된 날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인쇄소에 들러 내가 그린 그림을 인쇄를 하고, 액자에 넣어 선물 하나를 준비했다. 마지막 네트워킹에서는 각자 준비해 온 선물을 교환하는 이벤트가 있을 예정이었고, 나는 내 그림을 액자에 넣어 선물할 계획이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선물을 준비하고, 가방을 챙겨 집필실로 향할 준비를 끝마쳤다.


집을 나와, 지하철 역으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출발하면 약속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도착할 것 같았다. 그런데 집을 나와 몇 걸음도 채 가지 않았을 때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한 아저씨가 나에게 길을 물어왔다.


“학생... 길을 좀 물어보고 싶은데...”


아저씨의 물음에 나는 가던 길을 멈췄다. 그러나 그것은 간단하게 방향만을 알려주면 끝나는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먼저 아저씨가 물어보는 그 길을 나는 잘 몰랐다. 그래서 나는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서 알려주겠다고 했다.


“최종 목적지가 정확하게 어디신가요?”


아저씨는 자신의 집이 국립 수목원 쪽이라고 했다.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니, 목적지는 이곳에서 대중교통으로 약 2시간이 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지금 그곳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버스로 2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걸어가고 계신다고요?”

“이 겨울에?”


나는 어리둥절했다.

나의 물음에 아저씨는 어제 술을 마시고,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차비를 꿔 가려고 했지만, 그 어느 누구도 빌려주지도 않고 이야기조차 들어주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요즘 이런 식으로 돈을 구걸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쳐 가는 게 당연할 텐데...


과연 이 아저씨는 정말 지갑을 잃어버린 걸까? 아니면 사람의 연민을 자극하여, 돈을 빼앗는 그런 사람인 걸까? 평소 터미널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라,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다. 그래서 판별을 잘하는 편인데 오늘은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쳐 갈 수도 있었는데,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약속된 집필실 네트워킹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지금이라도 얼른 가야만 했다.


어쩌지...

그냥 갈까?

아... 어쩌지...

정말 지갑을 잃어버린 채, 그 어느 누구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그 먼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일까?

아... 정말 모르겠다. 그냥 가고 싶다.

그냥 못 본 척 쌩 가고 싶다. 그런데 내가 그냥 가면 이 아저씨는 이 겨울에 그 거리를 정말 걸어갈까? 아... 정말 모르겠다. 핸드폰을 보니 시간은 이미 20분이나 지나있었다.


아저씨는 그곳에서 배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핸드폰 조차 들고 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저씨의 발음이 약간 새셔서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저씨의 치아가 많이 빠져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저씨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일까? 아니면 거짓으로 돈을 원하는 사람일까?


아... 난 모르겠다.

그저 남의 일인 양, 죄송합니다 하고 지나쳐 가버릴 냉정함이 내게 있었다면 나는 편안했을까?

난 좋은 사람인가? 난 호구인가? 이 아저씨로 인해 나는 자아에 혼란이 왔다.


고민에 빠졌다. 정황으로 본다면, 아저씨가 거짓말을 할 확률이 70~80%, 진실을 말하고 있을 확률이 20~30% 라고 판단했다. 나는 이런 분들을 서울에서 너무나 많이 만나왔다. 그런데, 왜 오늘은 그냥 지나쳐 가지 못하고 이렇게 고민에 빠져 있는 걸까. 그건 아마도, 아저씨가 처음 내게 했던 그 말 때문인 것 같다.


“학생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그런데 객관적으로 보면, 허술한 옷차림과 발음이 새는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나라도 안 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나는 그 자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저씨의 모습에서 연민의 감정을 느꼈던 걸까. 결국 나는 아저씨에게 차비를 건네기로 결정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거짓일 확률이 80%가 넘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척 지나가야 된다. 그러나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그 희박한 확률이 끝내 나를 붙잡았다.


경찰에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은 어떻냐고 말할까? 혹은 카드로 시내버스를 한 번 찍어 드리면 어떨까? 등 수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포기하고 차비를 드리기 위해 아저씨와 함께 ATM기로 갔다. 그리고 만원을 뽑아 드렸다.

아저씨는 내 번호를 적어가셨다. 꼭 보내주신다고, 배 농장을 하니 후에 주소를 알려주면 배 한 상자까지 보내주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미 나는 배 한 상자는커녕, 차비마저 못 받을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고 있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알지도 못하는 아저씨는 수수료는 얼마냐고, 수수료까지 꼭 보내주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아저씨..., 원금도 안 주실걸 아는데... 수수료 걱정을 하시다니요."


내가 아저씨에게 차비를 빌려주기로 결정한 순간, 나는 이미 못 받을 것을 예상하긴 했다. 겨울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쳐 갔을지도 모르겠다. 겨울은 추우니까. 진실과 거짓을 떠나, 밖은 추우니까. 만원이 없다고 내가 지금 굶어 죽진 않으니까. 그냥 속는 셈 치고 도와드리고 싶었다.


아저씨에게 만원을 건네고 나는 지하철을 타러 갔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과연 나는 그 아저씨에게 좋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아저씨가 속인 많은 호구들 중의 한 명이었을까?


나는 지금 그 아저씨의 전화가 오길 기다리고 있다. 만원을 받을 생각으로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그 아저씨의 말이 결국 거짓인 것으로 이 이야기가 끝이 난다면, 이후 나는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선뜻 베풂을 건넬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는 36.5도의 따뜻한 피를 가진 인간에서, -1도 가된 35.5도의 인간이 되어버리겠지. 그리고 이렇게 나의 선의가 거짓으로 얼룩질 때마다, 점점 차가운 인간이 되어가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아저씨는 나를 조금 차가운 사람으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따뜻한 사람으로 남겨둘 것인가.


나는 좋은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호구였을까.

나는 좋은 사람일까, 아니면 호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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