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vs 천사
너무 피곤한 날 이 있다.
그냥 주저앉아 자고 싶은 그런 날.
타인을 배려할 수 없을 만큼 내 에너지가 바닥인 날.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지하철을 타고 먼길을 가고 있었다.
지하철로 대략 1시간 30분을 가야 했다.
무거운 가방 탓에 어깨도 욱신거렸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가방을 내려놓을 엄두도 나질 않았다.
이때는 선택을 아주 잘해야 한다. 중간에 내릴 것 같은 사람 앞에서 대기를 해야 한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는 한 남자를 타깃으로 삼았다. 그 남자 앞에 서서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나 그는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작은 미동조차 없었다.
“설마 이 남자 이대로 종점까지 가는 건 아니겠지?” 나는 두려웠다. 마치 터줏대감처럼 편안하게 앉아 있는 그 남자가 두려웠다.
“역을 두리번거리거나, 시계를 보거나, 짐을 챙기는 모습을 제발 보여주세요.” 나는 간절히 바랐다.
다른 자리가 비어지고 채워지는 동안 그는 여전히 앉아 있었고, 나는 서있었다.
다른 위치로 옮겨 대기할까 잠시 망설여지긴 했지만, 시험에서도 늘 정답을 바꾸면 틀렸지 않은가!.
첫 선택을 믿고 따르자! 나의 선택을 믿자!
30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남자가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가다듬기 시작했다.
곧 내린다는 신호다! 드디어 나는 앉을 수 있다! 이 순간을 위해 30분을 버텼다. 나는 내가 대견했다.
그래 꾸준히 버틴 보람이 있어!
남자가 일어섰다. 나는 앉을 채비를 했다. 바로 그 순간
저 멀리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 자리 있네 저기 앉으면 되겠네!”
아주머니 두 분이 멀리서 달려오고 계셨다.
안돼... 30분이나 기다렸다고요.ㅠ
지금 나 너무 힘들어요ㅠ 제발요ㅠ
아주머니의 자리 맡음 외침에
나는 앉을 수가 없었다. 내 머릿속에 천사가 외쳤다.
“ 자리를 양보해!, 넌 젊잖아! 버틸 수 있어!”
내 머릿속에 악마가 외쳤다.
“배려고 나발이고, 얼른 앉아!”
“1시간이나 더가야 된다고!”
정말 그냥 나쁜 놈이 되고 싶었다. 그만큼 너무 피곤했다.
그러나 나는 앉지 못했다. 슬펐다.
이리저리 사람에 치여 목적지까지 갔다.
종점에서 내려야 했는데 종점을 약 4 정거장 앞두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고 자리가 생겼다.
자리에 앉았다.
편안했고, 슬펐고, 짜증 났고, 기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이번 역은 종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