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
초등학교 5학년 때 즈음 선생님께 사군자를 배웠다.
사군자는 화선지에 먹물로 대나무, 난초, 매화, 국화를 그리는 한국화를 말한다.
사군자를 그리고 있으면, 옛날 선비들이 왜 사군자를 그렸는지 조금은 이해가 간다.
노트에 아무 생각 없이 낚서 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마음이 차분해지고, 호흡도 차분해진다.
평소 조용하고, 정적인 것들을 좋아해서 그런지 사군자는 나와 좀 더 잘 맞았다.
사군자는 꽤 오랫동안 내게 낚서이자, 심심함을 달래는 방법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낚서이자, 끄적임인 사군자를 잘 그릴 이유도 없다. 그저 편하게 슥슥 그리면 된다.
하나를 그리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지금은 낚서 혹은 끄적거림으로 취급받는 내 사군자도, 초등학교 시절에는 꽤나 대접을 잘 받았다.
초등학교 시절의 사군자는 내게 상장 효자 종목이었다.
사군자 덕분에 수업을 합법적으로 째고,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대회에 나가면 여기저기 구경 다니다가, 집중해서 한 20~30분 그린 후 제출하면 되었다.
사군자를 처음 배우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되었다.
주말에 심심해서 학교에 놀러 갔다가 우연하게 사군자를 그리는 두 명의 친구를 목격했다.
생소한 재료인 먹물과 커다란 붓, 그리고 스케치북이 아닌 화선지에 그리는 그 장면은 꽤나 신기했다.
그러나 신기했던 그 첫 느낌과는 다르게 내 입에서는 강한 허세가 쏟아져 나왔다.
“내가 그려도 그것보다는 잘 그리겠는데?”
나의 패기와 허세 가득한 말에 친구들은 곧장 들고 있던 붓을 동시에 내게 건넸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나의 말에 책임을 져야 했고, 그 결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커다란 붓을 쥐고
사군자를 그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붓을 세워 그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금만 손이 떨려도 그 떨림이 그림에 그대로 전달됐다.
사군자를 한참 그리고 있는데, 갑작스레 사군자 담당 선생님이 문을 벌컥 열고 등장했다.
친구들이 그림 그리는데 왜 장난치냐고 혼이 날 줄 알았는데, 나의 예상과는 달리 선생님께서는
“붓놀림이 예사롭지 않네” 라며 감탄하셨다. 더불어 사군자를 함께 배우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까지 해주셨다.
지금의 나였다면, 안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을 텐데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보다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었던 걸까.
아무튼 그날 이후 7일 동안 방과 후에 남아 사군자를 배웠고, 대회까지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상까지 수상하여 돌아왔다.
그때부터 사군자로 쭉 상장을 받기 시작했다. 대회가 있으면 대회 일주일 전부터 학교에 남아 사군자를 연습했다.
그렇게 장난으로 시작되었던 사군자가 어느새 상장 효자 종목으로 자리 잡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담당 선생님과 이별을 하면서 사군자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중학교에서는
사군자로 대회를 나가자며 권유하는 사람도 없었고, 공부도 해야 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사군자는 그저 취미 혹은 낚서로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