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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끄적거림

실패가 성장이 되는 일을 골랐습니다.

이력서 100번 쓰기와 공모전 100개 지원하기를 통해 얻은 것.

by 진영

대학교를 졸업한 지 2년이 조금 넘었을 때 즈음,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공모전에 도전했다. 공모전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좀 더 멋진 이유였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공모전을 시작한 이유는 단지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쌓기 위함이었다. 그 당시 나는 취업준비생이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떨어지는 이력서로 인해 단단하던 자신감도 조금씩 말랑말랑 해지고 있던 때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쓴 이력서가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열심히 땀 흘려 스펙을 쌓아온 이들의 이력서에 비하면 내 이력서는 너무나 보잘것없었고, A4 용지 한 장에 담긴 내 삶의 무게가 선택을 받기에는 너무나 가벼웠기 때문에.


꽃이 피는 이유. created by 진영


나는 이력서에 있는 빈칸을 하나라도 더 채우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공모전 사이트를 들락날락거렸다. 수많은 공고들 중에서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거르다 보면, 내 손안에 한 움큼 크게 쥐어져 있던 것들도 어느새 다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이곳 사정 또한 취업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원하는 사람 수에 비해 뽑히는 사람 수가 훨씬 적어 성공보다는 실패가 일상인 곳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크게 쨉 한방을 맞고 쓰러진 적이 없었다. 그저 100개쯤 되는 이력서를 쓰면서 수없이 작은 쨉을 맞았고, 100번을 훌쩍 넘어 선 공모전의 실패 속에서 작은 쨉을 소소하게 두들겨 맞았을 뿐. 다행스러운 것은 날아온 펀치의 세기가 그리 크지 않아서, 내 안에 박힌 수많은 감정의 강냉이들이 아직까지는 멀쩡하게 버텨주고 있었다.


이해해달라고 하지 마. created by 진영


한 번은 프랜차이즈 네이밍 공모전에 당선되어, 회사에 직접 찾아가서 상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합격소식을 저녁 6시 즈음 전화로 받았는데, 그 당시 나는 단기 알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네이밍 공모에 당선되셨습니다. 경쟁률이 아주 높았는데 축하드립니다."

"상장을 받으러 회사에 오셔야 하는데, 선생님은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평소 차분한 편임에도, 그날의 나는 펄쩍펄쩍 뛸 만큼 기분이 좋았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는 취준생인입니다."


나의 대답에 공손했던 관계자분의 말투가 약간 변했다.

"아..."

"취준생이시면, 시간 많으시겠네요. 저희가 알려드리는 날짜에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의 대답에 급격하게 변한 관계자분의 태도에 씁쓸함이 몰려왔다. 회사의 이름을 네이밍 한 사람이라면 뭔가 대단한 사람일 줄 알았는데, 취준생이라고 하니 꽤나 실망이 큰 듯했다.


상경(上京). created by 진영


나는 공모전 중에서도 특히 그림 분야에서 많은 수상을 경험했다. 상장도 받았고, 전시에도 참여했다. 그 덕분에 화학을 전공하고, 회사원을 준비하던 내가 현재는 그림작가로서 살고 있다. 실패 속에서 성장할 수 있는 일, 좌절 속에서도 기대감이 사라지지 않은 일을 선택하다 보니 이 길을 택하게 되었다. 100개의 이력서를 쓰고, 100번의 공모전을 하다 보니 모든 실패에도 각기 다른 감정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실패에도 다양한 감정이 담겨있는 실패가 있다. 단지 나는 실패가 성장이 되고, 실패 속에 희망이 있는 일을 택했다. 서툶 속에서 앞으로도 많이 실패하겠지만, 이 일을 하면서 많이 성장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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