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영화의 화려한 부활

2020년대, 동남아시아 영화 산업의 새로운 강자

by 태국학연구소


2024년, 태국 영화가 국내 박스오피스 점유율 54%를 기록하며 할리우드(38%)를 제쳤다.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는 1999년 '낭낙(นางนาก)'이 타이타닉을 넘어서며 뉴 타이 시네마 시대를 연 지 25년 만에 맞이한, 또 하나의 황금기다.


1999년, 첫 번째 부흥

태국 영화의 현대사는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는 태국 영화 100주년이자, IMF 외환위기로 영화 산업이 바닥을 친 해였다. 단 17편의 영화만 제작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 위기 속에서 논씨 니미붓(นนทรีย์ นิมิบุตร, Nonzee Nimibutr,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댕 버럴리와 일당들(2499 อันธพาลครองเมือง)'이 등장했다. 5개월 만에 7,500만 바트라는 당시로선 경이적인 흥행 기록을 세우며 태국 영화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그리고 1999년, 같은 감독의 '낭낙(นางนาก)'이 등장했다. 태국의 전통 귀신 설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영화는 태국에서 타이타닉의 흥행 기록을 깨뜨렸다.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 관객들이 자국 영화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후 아피찻퐁 위라쎗타꾼(อภิชาติพงศ์ วีระเศรษฐกุล, Apichatpong Weerasethakul,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2010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 등, 태국 영화는 '뉴 타이 시네마(New Thai Cinema)' 시대를 활짝 열었다.


2020년대, 두 번째 도약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 영화 산업이 침체에 빠졌다. 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0년 개봉작은 37편으로 줄었고, 극장은 문을 닫았다. 하지만 2021년 12월, '포 킹스(โฟร์ คิงส์, 4Kings)'가 170억 바트를 벌어들이며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22년 태국 박스오피스는 전년 대비 300% 성장했다. 그리고 2023년, 진짜 기적이 시작되었다. '쌉러(สัปเหร่อ, The Undertaker)'는 단 5일 만에 1억 바트를 돌파했고, 최종적으로 720억 바트를 벌어들였다. 제작비 10억 바트로 72배의 수익을 올린 것이다. '티욧(ธี่หยด, Death Whisperer)'은 3일 만에 1억 바트를 넘기며 그해 최고 속도 기록을 세웠다.

특히 주목할 점은 시장 점유율의 변화다. 평소 15%에 불과하던 자국 영화 점유율이 2023년 44%, 2024년에는 54%로 급증했다. 태국 관객들이 할리우드가 아닌 자국 영화를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공의 비밀, 로컬의 재발견

태국 영화가 다시 성공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철저하게 로컬에 집중했다. '쌉러(สัปเหร่อ)'와 '티욧(ธี่หยด)' 모두 태국의 전통 설화와 민간신앙을 소재로 했다. 글로벌 시장을 의식한 무국적 영화가 아니라, 태국인들의 정서와 문화를 깊이 파고든 영화들이 오히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둘째, 장르의 다양화다. 공포, 액션, 드라마,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이 고른 성과를 냈다. 2017년 '배드 지니어스(ฉลาดเกมส์โกง, Bad Genius)'가 입시 부정행위라는 참신한 소재로 성공한 것처럼, 태국 영화는 더 이상 특정 장르에 갇히지 않는다.

셋째,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다. 로케이션 촬영 리베이트를 20%에서 30%로 확대하고, 670만 달러의 신규 펀딩을 조성했다. 소프트 파워(Soft Power) 정책의 일환으로 영화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넷플릭스 효과와 글로벌 진출

OTT 플랫폼의 등장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넷플릭스(Netflix)는 현재 미국에서만 87편의 태국 영화와 시리즈를 스트리밍하고 있다. 극장 개봉 후 빠르게 넷플릭스에 공개되면서, 태국 영화는 동남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관객과 만나고 있다.

특히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백만장자가 되는 법(How to Make Millions Before Grandma Dies)'은 2024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20억 바트 이상을 벌어들이며, 태국 영화 최초로 오스카 국제영화상 최종 5개 후보에 오를 가능성을 보였다. 1984년부터 오스카에 출품했지만 한 번도 최종 후보에 오르지 못했던 태국으로서는 역사적 쾌거다.


한국 영화의 데자뷔

태국 영화의 부활은 1999년 한국 영화 '쉬리'의 성공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같은 해, 비슷한 방식으로 자국 영화에 대한 관객의 신뢰를 회복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지금, 두 나라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 산업의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한국 영화가 '기생충', 'BTS'로 상징되는 K-컬처의 글로벌 확산을 통해 성장했다면, 태국 영화는 철저하게 로컬에 뿌리내린 콘텐츠로 먼저 내수 시장을 장악한 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30년 만의 호황, 그리고 미래

Major Cineplex Group의 CEO는 2024년을 '30년 만의 가장 큰 호황기'라고 평가했다. 단순히 흥행 수익만의 문제가 아니다. 2023-2024년은 태국 영화가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도약을 이룬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2024년 8편의 영화가 1억 바트 이상 수익을 올렸고, 상위 5편이 합산 16억 바트 이상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태국 영화가 이제 자신만의 정체성과 이야기 방식을 확립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화려함을 모방하는 대신, 태국의 정서와 문화를 담은 이야기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배웠다.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고, 스트리밍 시대의 도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로컬이 글로벌이 되는 시대

태국 영화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진정성 있는 로컬 콘텐츠가 결국 글로벌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티욧(ธี่หยด)'의 귀신이 무섭고, '쌉러(สัปเหร่อ)'의 장의사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그것이 태국의 것이기 때문이다.

1999년 '낭낙(นางนาก)'이 그랬듯, 2023년 '쌉러(สัปเหร่อ)'는 자국민에게 자부심을 주었다. 그리고 그 자부심이 박스오피스 점유율 54%라는 숫자로 나타났다. 태국 관객들은 이제 자국 영화가 할리우드 못지않다는 것을 안다. 아니, 어쩌면 더 재미있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2025년, 태국 영화는 어디로 갈까? Major Cineplex의 CEO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 듯하다. '30년 만의 호황'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태국 영화는 지금, 1990년대 홍콩 영화, 2000년대 한국 영화가 걸었던 그 길을 걷고 있다.

동남아시아 영화 산업의 새로운 강자, 태국(ประเทศไทย). 이들의 다음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이 칼럼은 태국 영화 산업 관련 공개 자료와 박스오피스 데이터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1. '쌉러(สัปเหร่อ)'는 장례 의식에서 시신을 닦고 관리하며 화장을 돕는 '장례사(The Undertaker)'를 뜻합니다. 2023년에 개봉하여 태국 전역에서 신드롬을 일으킨 공포 코미디 영화 <쌉러(The Undertaker)>의 주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배경 및 줄거리: 태국 북동부 이산(Isan) 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법대 졸업생인 '쩻(เจิด)'이 아버지를 대신해 겁 많은 장례사가 되는 과정과, 죽은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유체이탈을 시도하는 '씨앙(เซียง)'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흥행 성적: 2023년 태국 최고의 흥행작으로, 약 7억 바트(한화 약 26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지난 10년 중 가장 성공한 태국 영화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

특징: 단순한 공포 영화를 넘어 삶과 죽음, 상실에 대한 철학적인 메시지를 태국 전통 문화와 섞어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는 평을 받습니다.

시리즈: 인기 있는 웹 시리즈이자 영화 프랜차이즈인 타이반 유니버스의 스핀오프 작품입니다.


2. '티욧(ธี่หยด, Tee Yod)'은 태국에서 전설적인 괴담을 바탕으로 제작되어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공포 영화 시리즈입니다. 영어 제목은 <데스 위스퍼러(Death Whisperer)>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요 특징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원: 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 Pantip.com에 올라온 실화 바탕의 괴담이 소설로 출간된 후 영화화되었습니다.

줄거리: 1972년 태국 칸차나부리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어느 날부터 밤마다 정체모를 "티욧... 티욧..." 하는 기괴한 속삭임이 들리고, 한 가족의 둘째 딸이 악령에 빙의되면서 벌어지는 사투를 다룹니다.

흥행 및 기록:

1편 (2023): 태국 최초로 IMAX로 개봉한 공포 영화이며, 약 5억 바트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2편 (2024): 1편의 성공에 힘입어 개봉 후 단 32시간 만에 1억 바트를 돌파하는 등 태국 영화사상 역대급 흥행 기록을 경신했습니다.

의미: '티욧'이라는 단어 자체의 정확한 뜻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고대 몬족(Mon)의 언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는 신비롭고 공포스러운 주문과 같은 소리입니다.

현재 1편과 2편 모두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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