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기:쁘랍다 윤, 25년의 우회로 1

by 태국학연구소

1. 방콕으로 돌아온 청년


1998년, 스물다섯 살의 쁘랍다 윤은 뉴욕에서 방콕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온 이유는 병역 의무 때문이었다.

쿠퍼 유니언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실험 영화를 공부한 그는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다.

밀턴 글레이저 같은 거장 밑에서 배웠고,

앤디 워홀이 디자인한 표지 때문에 돈 드릴로의 책을 집어 들 정도로 시각 예술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방콕에 돌아온 그는 자신의 태국어를 시험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내 태국어가 어떤지 확인하려고 짧은 이야기들을 쓰기 시작했어요." 나중에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뉴욕에서 성인이 된 청년에게

태국어는 어린 시절의 언어였고, 동시에 낯선 모국어이기도 했다.


그의 집안 배경도 흥미롭다.

아버지 쑷티차이 윤은 태국의 유력 영자신문 <The Nation>의 공동 창간자였고,

어머니 난따완 윤은 패션 잡지 편집자이자 소설가였다.

어린 쁘랍다가 자란 집은 작가와 지식인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책으로 가득했다.

셜록 홈스 번역본과 중국 무협 소설을 탐독하던 소년은, 태국 문학도 읽었다.

특히 그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작가 중 한 명은 '유머리스트'라는 필명을 쓴 인물이었다.

"그는 태국어 선생님이었고, 미디어의 태국어 사용을 비판했어요.

풍자적이었죠. 정치적이었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으로요."


이 말에서 우리는 이미 단서를 발견한다. '정치적이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방식'

이것이 쁘랍다 윤 문학의 전체 궤적을 관통하는 열쇠가 될 줄,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쁘랍다 윤은 누구인가?)


쁘랍다 윤(ปราบดา หยุ่น)은 단순히 ‘글을 쓰는 작가’라는 범주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장르와 매체, 국경을 넘나들며 삶을 탐색하는, 말 그대로의 ‘이야기꾼(Storyteller)’이다.


1. 배경: 미디어 가문의 아들이자 경계인

1973년 방콕에서 태어난 그는 태국을 대표하는 미디어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 쑷티차이 윤(Suthichai Yoon)은 유력 영자지 《더 네이션(The Nation)》의 공동 설립자이며,

어머니 또한 잡지 편집장이자 소설가였다.

그러나 그는 자연스레 언론인의 길을 잇는 대신,

14세부터 26세까지 미국에서 생활하며 ‘이방인’이자 ‘예술가’로서의 자아를 형성해 나갔다.

뉴욕의 쿠퍼 유니언(Cooper Union)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하며 쌓은 시각적 감각은

이후 그의 문학적 문체와 서사 구성에 깊이 스며들었다.


2. 철학: “성공보다는 매일의 루틴”

쁘랍다 윤은 자신을 “시각 예술가인데, 어쩌다 보니 글도 쓰게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정의에는 정체성을 고정하지 않으려는 그의 태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거창한 사회적 메시지나 문학적 성취에 집착하기보다,

매일 아침 출근하고 저녁에 귀가하는 규칙적인 삶의 리듬 속에서 창작을 지속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2002년, 최연소로 태국 최고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조차

그는 “내 글이 사회에 큰 가치를 준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 놀랐다”고 회상한다.

그의 태도는 일관되게 담백하고 절제되어 있다.


3. 지향점: 태국과 세계 사이의 가교

태국으로 돌아와 군 복무를 마친 뒤,

그는 현대 태국의 도시적 삶과 전통적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을

날카로운 관찰력과 특유의 위트로 포착해 왔다.

한편으로는 일본 문화의 단순미에 깊이 매료되어,

한때 일본 사찰의 승려가 되는 삶을 꿈꾸기도 했을 만큼

아시아적 사유와 철학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였다.

현재는 독립 출판사 ‘타이푼 스튜디오(Typhoon Studio)’를 운영하며,

자신이 신뢰하는 해외 작가들을 태국에 소개하고 젊은 창작자들을 지원하는 등

문화적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복잡한 수식어를 경계한다.

“어떤 이야기는 글로, 어떤 이야기는 영상이나 색채로 전할 뿐”이라는 그의 말처럼,

쁘랍다 윤은 매체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흘려보내는, 자유로운 감각의 예술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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