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음으로 말하기:쁘랍다 윤, 25년의 우회로 2

2. 2000년, 태국 문학의 균열

by 태국학연구소

2. 2000년, 태국 문학의 균열


2000년, 쁘랍다 윤은 두 권의 단편집을 동시에 출간했다.

『เมืองมุมฉาก』(므앙뭄착, 직각의 도시)는 뉴욕을 배경으로 한 다섯 편의 연작이었고,

『ความน่าจะเป็น』(쾀나짜뻰, 개연성, 확률)은 열세 편의 단편을 모은 책이었다.

방콕에 돌아온 지 겨우 2년 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책들은 즉시 태국 문단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당시 태국 문학은 무엇이었을까.

사실주의적 서사, 농촌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 사회적 교훈, 명확한 도덕적 메시지

—이런 것들이 "진정한" 태국 문학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쁘랍다의 이야기들은 달랐다.

이야기는 제대로 끝나지 않았고, 인물들은 무언가를 해결하지 못했으며, 의미는 유예되었다.

방콕의 버스, 사무실, 거리가 배경이었지만 구체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다.

익명의 도시인들이 스쳐 지나갔고, 우연한 사건들이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설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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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서양에서 주목받은 단편집이자 대표 단편의 제목인『ความน่าจะเป็น』(쾀나짜뻰, 개연성, 확률)은 영문판에서는 단편집의 이름이 『The Sad Part Was』로, 대표단편은 「Pen in Parentheses」(괄호 속의 펜)으로 발표를 하였다.

나는 그 제목부터 멈춰서 있었다.

쁘랍다가 건네 준 태국어판과 제목이 달랐다.

태국어 판(Probability, 확률)은 수학적이고 좀 냉정한 느낌을 준다면

영문판(The Sad Part Was, 슬픈 부분은...이었다)은 훨씬 감성적이고 서사적인 느낌을 준다.

이는 쁘랍다 윤의 작품이 가진 '포스트모던한 실험성' 뒤에 숨겨진 '현대인의 우울과 고독'을 서구 독자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영문판은 서구 독자들이 쁘랍다의 세계관에 더 잘 몰입할 수 있도록 작품 순서도 조정하고,

띄어쓰기가 없는 태국어와는 다른 영어문장의 구조에 따라 괄호를 활용하였다.

영어권 독자들은 그들의 ‘의식 흐름’에 따른 기법처럼 읽히게 된 것이다.

번역가의 능력이 보태어진 또 한편의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태국어 판이나 영문 판이나 일반적인 소설책보다는 여백을 많이 사용하였다.

그래픽 디자이너이기도 한 쁘랍다의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가 돋보이는

하나의 ‘디자인 오브제’처럼 느껴졌다.

보통 괄호는 부가적인 정보를 담는 장치인데, 여기서는 괄호 안이 곧 이야기였다.

본문과 주석의 경계가 무너졌다.

작가는 스스로를 조롱하고, 이야기는 끊임없이 미끄러졌다.


또 다른 단편 『สิ่งมีชีวิตที่เรียกว่าคน』

(씽 미 치윗 티 리악 와 콘, 인간이라 불리는 생명체, The Creatures Called Human , 2001)에 수록된

นางสาวอวกาศ(낭싸오 아와깟, Miss Space)에서는 버스가 등장한다.

방콕의 흔한 버스 안이다.

버스는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잠시 공유하는 이동 공간이자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결코 서로의 세계에 개입하지 않는 비 장소의 전형이다.

방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의 고립된 공존을 하고 있는 주인공은

이 만원 버스의 소음과 혼잡 속에서도 마치 중력이 없는 진공 상태에 떠 있는 듯한 소외감을 느낀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방콕의 풍경은 거대한 우주 성단처럼 멀게만 느껴지고,

옆자리의 승객은 수만 광년 떨어진 행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낯설다.

여기서 '우주(Space)'는 탁 트인 자유의 공간이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가 차단된 '절대적 거리감'의 메타포로 작동한다.

쁘랍다 윤은 이 짧은 버스 여정을 통해

현대 도시의 화려한 공존 뒤에 숨겨진 차가운 고립을 포착한다.

이는 이후 『베이스먼트 문』에서 보여줄 폐쇄된 '지하'의 전조이기도 하다.

우주선 같은 버스에서 내린 개인들이 결국 숨어든 곳이 감시와 고립의 지하 벙커라는 점은,

태국 사회의 소통 불능이 얼마나 심화되었는지를 비극적으로 암시한다.


「เรื่องตลก 69」

(르앙 딸록 69, 우스운 이야기 69)에서는 잘못 배달된 '라면 상자' 속의 거액이

인물의 삶을 구원하지 못하고 오히려 파국으로 이끈다.

행운이라 믿었던 우연은 즉각 피비린내 나는 폭력으로 변질되며 일상을 파괴한다.

이는 쁘랍다 윤의 문학이 다루는 '통제 불가능한 우연(Probability)'과

'출구 없는 고립'의 정서와 궤를 같이한다.


독자들은 당혹스러웠다.

이게 소설인가?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일부 비평가들은 "언어의 재앙”이라고 비난했다.

문체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이것이 태국 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환호했다.


2002년,

『ความน่าจะเป็น』(쾀나짜뻰, 개연성, 확률)은

동남아시아 문학상(S.E.A. Write Award)을 수상했다.

쁘랍다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제도권 문학이 이 급진적 실험을 승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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