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스타가 된 젊은 작가
4. 스타가 된 젊은 작가
2000년대 초반, 쁘랍다 윤은 태국에서 일종의 문화 아이콘이 되었다.
잡지 표지를 장식했고, 유명인들과 교류했으며,
태국 뉴웨이브 영화의 거장 펜엑 랏따나르앙과 함께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2003년 개봉한 <Last Life in the Universe>의 각본이 그의 작업이었다.
고독한 일본인 도서관 사서와 태국 여성의 기묘한 만남을 다룬 이 영화는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았다. 2006년에는 <Invisible Waves>의 각본도 썼다.
그의 영감은 활자에만 머물지 않았다.
포스트펑크와 뉴 웨이브 음악에 빠져 있던 그는
The Cure, The Smiths, New Order, Nine Inch Nails, The Pixies의 정서를 문학에 이식했다.
2002년 첫 장편소설 『ชิตแตก(칫땍, Chit-tak)!』을 출간하면서
그는 출판사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하였다.
“이 책에는 사운드트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태국의 유명 인디 밴드 บัวหิมะ(Bua Hima)가 그의 가사에 선율을 입혔다.
유니버설 뮤직이 배급을 맡았고, 몇몇 곡은 꽤 인기를 얻었다.
이는 태국문학사에서 ‘멀티미디어 스토리텔링’의 선구적 사례로 남게 된다.
책의 제목인 『ชิตแตก(칫땍, Chit-tak)!』은 그의 언어유희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영어의 'Shit'을 태국식으로 비튼발음에,
깨지다, 폭발하다라는 뜻을 가진 '땍'을 붙여
"X됐다" 혹은 "엉망진창"이라는 의미를 포스트모던하게 변주했다.
하지만 그의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언어라는 견고한 감옥에 균열을 내어,
그 틈새로 도시인의 파편화된 진실을 엿보려는 시도였다.
그는 단어를 부수고(땍), 소리를 섞으며, 고정된 의미로부터의 탈주를 끊임없이 꿈꿨다.
창작의 영토는 계속 확장되었다.
2004년에는 자신의 디자인 미학을 투영한 Typhoon Studio를 설립해
수많은 책 표지들을 직접 디자인했고
2012년에는 방콕예술문화센터(BACC) 4층에
독립 서점 Bookmoby Readers' Cafefmf 열어 독립문학의 거점을 마련하였다.
그는 경계가 없는 창작자였다.
작가이자 디자이너, 영화인이자 음악가였던 그는 동시에 정교한 번역가이기도 했다.
그는 J.D. 샐린저의 모든 책,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와 『Pnin』,
앤서니 버제스의 『시계태엽 오렌지』,
카렐 차페크의 『R.U.R.』 같은 현대 서구 고전들을 태국어로 번역했다.
태국 문단에서 그의 언어적 스펙트럼을 다시 한 번 더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계속 글을 썼다.
단편, 에세이, 소설 등 10년 동안 20권이 넘는 책을 냈다.
100개가 넘는 책 표지를 디자인했다.
그런데 이 화려한 질주 속에 기묘한 정적이 찾아왔다.
2005년 『팬다(Panda)』를 기점으로 장편 작가로서 정점에 서는 듯했던 그가,
2007년 이후 약 10년 동안 단 한 권의 장편 소설도 발표하지 않은 것이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젊은 스타 작가의 이 이례적인 '장편 침묵'은
태국 문단에 기묘한 의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