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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우나고우나 Apr 01. 2024

이 여행은 프리퀄, 본편은 계속된다

슬로베니아

 이제 겨우 3월 되고 이틀이 지난 날. 엄마가 집에 있는 행운목이 20년 만에 꽃 피웠다며 사진과 함께 행운을 빌어준다.


아 그 나무가 행운목이었구나. 그 나무도 꽃을 피울 줄 알았던 거구나. 

엄마는 20년 동안 행운에 물을 주고 있었던 거구나. 그리고 당신께서는 결국엔 행운을 꽃피우셨구나.


 꽃 피운 3월이다. 열두 달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고 가장 싱그럽다고 생각하는 3월. 추위에 가려져있던 만물이 깨어나는 물오름 달. 그래서 나는 슬로베니아를 선택했다. 오래되다 못해 바래저 버린 내 버킷리스트 속의 슬로베니아에 가면, 왠지 행운이 따라올 것만 같아서.



에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Belgrade)를 거쳐,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슬로베니아. 유럽 생활 동안 확실하게 배운 점이 있다면, 날씨 불평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 오랜 시간 내 컴퓨터 속 바탕화면이던,  스크린 속 평면으로는 선명한 색채를 자랑하던 풍경과 온화한 기후의 축복을 받은 대륙이던데. 


 참, 이게 무슨 행운인지. 그럼에도 이 빗방울에 올드 타운의 돌바닥의 색이 더 짙게 선명해진다. 지독하게 내리는 비에도 광장 시장은 북적거리며, 토요 마켓엔 생생함이 느껴진다. 드래건 다리의 4마리 용의 꼬리를 타고 빗물이 수려하게 떨어진다.



블레드 (Bled)



 그렇게 고대하던 블레드에 와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날씨로 인해 비로소 보이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 낮게 깔린 구름들에 저 너머의 풍경이 가려진다. 물가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이 풍경의 반주가 되어준다. 그렇게 멍하니 저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호수를 따라 걷다, 공사로 인해 막힌 길을 다시 되돌아온다.


 그래, 되돌아온다. 나는 아주 끈질기게 이 도시에 되돌아오겠다. 미련일 수도 있고, 집착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쏠려버린 마음을 다시 다잡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아마 이 여행은 프리퀄(Prequel). 본편은 계속 이어진다.




드래곤 다리(Zmajski most)와 루블라냐 성(Ljubljanski grad)



 너 그 나라 가봤어? 라 물을 때, 거기에 뭐가 있는데? 하는 곳이 좋다.

유명한 관광 스팟은 없더라도 골목 곳곳을 걸어 다니며, 맛있어 보이는 빵집을 구글맵에 표시해 놓았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오기도 하고. 괜스레 안 하던 야외 러닝도 새삼 하고 싶고. 저렴하지만 질 좋은 숙소에서, 늦은 아침 빈둥대며 일어나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한 음식점에서 슬로베니아 덤플링 (스트루클리)을 먹고, 마침 주말인지라 바로 옆 광장에 열린 토요 마켓을 돌아다니다, 아주 새빨갛게 익은 딸기 한 바구니를 싸게 샀다며 좋아한다. 마침 또 집 앞에 있던 저 빨간 간판 가게가 숙소 주인이 추천한 맛집이라, 동네 주민처럼 잠깐 나가 맥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인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낯선 공간에서 익숙함을 느끼러 왔나 보다.


 늘 목적이 없어졌을 때 무언의 불안에 휩싸였었다. '사랑스러운(Ljublj)'의 어원으로부터 파생됐었다 카더라던 류블랴나 (Ljubljana)에서, 무엇을 그리 갈구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그 자체가 좋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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