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4년이나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건 옛말이고. 요즘같이 하루가 멀다 하고 변하는 시대에 4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게다가 그 4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인류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대 질병 코로나가 창궐하고, 교과서에나 보던 전쟁이 일어나고 (심지어 진행 중이고), AI는 더 똑똑해지고.
그렇게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더블린에, 4년 만에 돌아왔다. 이게 비행기인지 지하철 1호선인지 의심이 들게 하는 국적 저가 항공부터 그 시절이 떠오른다. 변변치 않은 추억이라 생각했건만, 나름 피부로 느끼고 있었나 보다. 공항에 도착하니 자연스레 버스정류장까지 몸이 이끌었다. 아 그래, 더블린도 2층 버스였었지. 괜스레 2층에 자리를 잡으니, 버스 안내 음성도 참 오랜만이다. 영어와 함께 게일어도 같이 표기되는 것도.
미처 잊고 있었다. 무엇보다 녹색이 잘 어울리는 도시는 더블린이라는 걸. 집 앞 소소한 크기의 녹색 정원, 도시의 정체성을 말하는 듯한 밤거리의 녹색 네온사인. 그야말로 삼락의 나라이다. 낮은 지붕들과 투박한 색의 건물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아스팔트. 간간이 들려오는 서툰 영어를 하는 어학연수생들. 심지어 길거리의 취객들과 건들거리는 청소년들까지. 아이리시들이 부끄러워하는 더블린의 명물 '스파이어'도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다. 살포시 왔다 무심하게 돌아가려 했건만, 마치 짙은 향수로 심연에 잠기는 것 같다. 나는 이 도시는 잊은 게 아니었구나. 그리워했구나.
나름 아이리시를 잘 안다고 감히 자부한다. 공항에서 왜 더블린에 왔냐는 질문에 '맥주 마시러 왔어'라는 대답은 바로 프리 패스이다. 덧붙여 하루에 8개의 각기 다른 펍을 갈 거라는 말에, 호탕하게 웃으며 녹색 입국 도장을 여권에 찍어준다.
4년 전 내 발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한다. 20대 초반의 나는 어디에 머물렀던가. 구글 지도에 저장해 놓은 케케묵은 리스트를 보니 죄다 펍이다. 거리를 걸으며, 맞아, 여긴 그때 그 펍이었지. 이 펍에선 맥주에 물을 탔던데. 여기서는 잭콕을 유독 많이 마셨었지. 이 펍은 하드한 락 노래가 나왔더랬지. 그리고 그 광란의 밤을 지나 저 건너편 버스 정류장에서 나이트 버스를 타고, 남들은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에 나는 긴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길을 걷다 방앗간처럼 들린 펍에서 파인트 한 잔을 주문한다. 바 테이블의 옆자리 친근한 중년 아저씨들과 한두 마디 섞다 보면 아이리시 맥주와 위스키 자랑이 한창이다.
"위스키? 기네스?".
"기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