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나게 잘린 사진

by 양수리 감성돈

2020년 4월 5일-나로 살기 96일째


오랜만에 고향 충주에 내려갔다. 어렸을 때 내 모습이 보고 싶어서 구석진 곳에 있던 앨범을 찾아서 들춰봤다. 응? 왜 사진에 다 네모나게 얼굴이 잘려있지? 어렸을 때 어린이집에서 생일잔치를 하며 찍은 사진에 내 얼굴은 있는데 할머니 얼굴이 없었다. 그 다음장도, 다다음장도 어린이집 사진에 할머니의 모습은 없었다.


“할머니, 왜 사진이 없어요? 이거 고모가 다 잘라버린거예요?”

고모가 조현병이 있는데 가위로 무언가 다 오리거나 찢거나 깨부수는 행동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내 대학교, 대학원 졸업사진도 눈동자를 칼로 파놨다. 그래서 충분히 고모가 의심스러운 상황이였다.

“내가 그런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엄마들인데, 나만 할머니라서 보기 싫어서”

그제서야 어린이집 생일잔치 때 찍은 사진을 유심히 살펴봤다. 나랑 비슷한 시기에 생일인 친구들 네 명이 있었고, 그 옆에 엄마들이 한복을 입고 같이 있었다. 다른 어머니들은 젊어 보였는데 할머니는 본인만 할머니라는 것이 싫으셨나보다. 그래도 나에게는 몇 장 없는 어린시절의 사진인데, 이렇게 네모나게 잘라두니 보기 싫어졌다. 이건 내 추억인데. 내 추억에 난도질 당한 기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충주 탄금대로 소풍을 갔었다. 친구들과 같이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친구들이 말한다. “은주야, 너네 할머니 오셨어” 다른 친구들은 엄마들이 도시락을 챙겨왔는데 그 중에서 우리 할머니도 화장을 곱게 하고 웃으면서 나를 뒤따라 길을 올라오고 계셨다. 다른 친구들은 본인이 엄마를 보며 알은체를 했지만, 나는 나를 보며 웃고 있는 할머니를 뒤로 한 채 한참을 뛰어 올라갔다. 나만 할머니라는 게 어린 나이에 몹시 기분이 상했다. 할머니도 그런 기분을 느끼신걸까. 나도 할머니의 존재를 부끄러워하던 내 모습을 눈치채신 걸까. 그래서 생일잔치 사진에서 할머니 자신을 오려낸 것 또한 비슷한 이유였을까.

엄마가 없지만, 할머니라도 계시다는 것에 감사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어느날 할머니께서 혼자 치과에 가셨다. 치과에 내 초등학교 당시 친구와 친구의 엄마가 같이 병원에 있었다고 했다. 우리 집에 놀러온 적 있던 친구는 우리 할머니를 보고 인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우셨다고 했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다 엄마가 있는데, 나만 엄마가 없다는 것이 속상하다며 내 친구와 친구의 어머님이 계신 곳에서 울었다고 한다. 이 얘기는 할머니께서 내게 해주신 이야기가 아니라 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다음날 내게 했던 말이다.

어린 나이에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쪽팔려. 왜 친구 앞에서 울고 난리야. 나보다 엄마라는 존재를 더 그리워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친구 앞에서 우냔 말이다. 할머니의 잘려진 사진도. 친구와 친구의 엄마를 보며 울던 모습도. 이유를 모르는 건 아닌데 그냥 마음이 미어터진다. 어린 날의 내가 그러하듯이,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하다. 우리 할머니 나 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네. 오늘은 충주에 계신 할머니께 안부 전화라도 먼저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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