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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Apr 26. 2020

밥 잘 챙겨 먹어라, 싼 걸로 다가.

할머니가 계신 충주에 가면 할머니께서 마지막 헤어질 때 인사말처럼 하는 말씀이다.

“밥 잘 챙겨 먹어라, 너무 좋은 거 먹으려고 하지말고, 싼 걸로다가”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안 좋았다. 아니, 손녀딸이 먹으면 또 얼마나 먹는다고, 돈 벌어서 어디다 쓴다고 먹기라도 잘 먹어야지... 하면서 대충 듣고 흘렸다.     


나는 오늘 피눈물은 아니지만, 아버지께, 할머니께, 그리고 어제의 나 자신에게 미안해져 눈물이 났다. 인터넷으로 자주 장을 보고 새로운 것을 먹고자 도전을 많이 하는 편이다. 오늘은 지난번에 인터넷으로 주문한 음식이 배송 오는 날이였다. 어제 냉장고에 음식물이 상한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파서 이제 절대로 그런 일 없도록 해야겠다고 혼자 다짐 또 다짐했다. 오후 7시쯤 주문한 음식이 배송되어 왔다.     


“어, 이게 뭐지? 잘못왔나?”

지난번에 모듬전을 주문했을 때 7,8천원 정도에 푸짐하게 포장되어 와서 만족스럽게 먹었었다. 모듬전을 다 먹었고, 너무 맛있어서 이번엔 또 새롭게 오색꼬지전을 주문하였다. 10% 할인된 가격으로 8천원 정도 내고 주문한 음식이 왔다. ... 뭐지? 왜 2개 밖에 없지? 배송사고인가? 꼬지가 단 두 개가 프라스틱 용기에 포장되어 왔다. 인터넷에 다시 들어가서 내가 주문한 음식을 보니 지난번과 비슷했으나, 분명 다른 것이였고, 배송 개수가 2개로 되어 있었다. 난 그것을 이제야 확인했다.     


그리고 음식 앞에서 울어 버렸다.

쌀 살 돈 아끼려고 할머니께서 정부에서 타 온 정부미 얻어 먹기로 했는데...

바로 어제 냉장고에 상한 음식들을 보며 한숨을 쉰 나인데...

경기재난기본소득 신용카드 받고 나서 한 푼이 아까워서 저렴한 식재료를 사려고 노력했는데...

난 충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 식비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백수가 이게 무슨 사치야. 백수가 뭐 그리 좋은 걸 먹겠다고 꼬지 2개에 8천원 하는 음식을 사먹어. 어제했던 내 다짐들은 뭐고. 이렇게 비싼 거 먹으라고 아버지께서, 할머니께서 한 푼 두 푼 모으시고, 바쁘게 일하신 게 아닌데.... 좀 저렴한 거 먹어도 되고, 가끔 분위기 전환 할 겸 좋은 거 먹어도 되는 인생인데... 냉장고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이걸 어떻게 먹어.  

  

백수 감성돈, 정신 좀 차려. 이번엔 누구 탓할 것도 없이 완전한 나의 잘못. 혼구녕 나야해.

백수의 격을 지키며, 백수답게, 할머니 말씀처럼 잘 챙겨먹되, 조금 저렴한 거 먹고 살자.

저렴하다고 해로운 거 아니니까. 나를 해하는 거 아니니까. 건강한 정신차리고, 건강한 먹거리 먹자. 깨어있자, 은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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