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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May 02. 2020

더위가 왔다, 공황도 왔다.

5월 1일, 5월이 시작된 지 하루 밖에 안 되었는데, 날씨가 너무 더웠다. 긴팔을 입고 봄잠바를 입고 건물 현관까지 나갔다가 잠바를 두고 밖으로 나갔다. 이렇게 갑작스레 더워질거라고 생각을 못했다. 마스크까지 쓰고 있어서 숨이 좀 찼다. 밖으로 나간 지 10분도 안 되어서 길거리에서 순간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마스크 속 입가에는 땀이 흥건히 찼고, 목을 타고 등까지 축축한 기분이 다가왔다. 그리고 아... 어지러워. 가던 걸음을 멈추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선풍기를 켰다. 에어컨도 켰다. 에어컨에 실내 온도가 29도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7년차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취약한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더위다. 여름에 특히 더위를 참지 못하고 공황이 오고, 심하면 발작까지 온다. 작년 근무했던 곳이 선풍기도, 에어컨도 잘 안 틀어주던 곳이라서 난 예기불안에 시달렸고 집으로 돌아와 공황발작이 진행되어 119 차량을 타고 병원 응급실로 가야했다. 공황장애 7년차 정도 되었으면 익숙해질만도 한데 더위에는 녹아내린다. 그리고 끔찍한 두통 증세가 나타난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번 여름은 또 엄청 무더울거라고 했고, 나도 그에 맞게 컨디션이나 나를 조절하기 위해 노력하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의 더위는 너무 갑작스러웠다.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계속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더워서 어떻게 하지? 마스크까지 쓰고 다니느라 숨이 많이 찬데, 어떻게 돌아다니지? 그런 고민들을 계속하다가 아버지의 전화를 받았다. 하루에 한 번 떨어져 사는 아버지와 통화를 하고는 한다. 


나는 말했다.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너무 답답하다고. 더위까지 오니까 못 참겠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사람 많은 데 피해서 다니고, 사람 없을 때 중간 중간 벗고 다니라고.  

  

나는 말했다. 너무 더워서 살 수가 없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선풍기 켜. 에어컨 켜.     


나는 말했다. 밖에 돌아다니려면 걱정이다. 너무 더워서 힘들 것 같다.

아버지는 말했다. 백수가 더울 때 낮에 뭐하러 돌아다녀. 집에 있어.     

나는 말했다. 이번 여름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엄청 무덥다고 한다. 걱정된다.


아버지는 말했다. 너 지난 여름에도 그랬어. 잘 견디면서 뭘.     

공황장애 전문가보다 더 명의가 아버지였다니.

나는 갑자기 삶이 명료해졌다. 맞아. 왜 걱정하지? 생각해보면 나 코로나 블루? 그런 것도 없이, 코로나 일 때 우울함도 없이 잘 견뎌왔잖아. 너무 지레 겁먹지 말자.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마음의 문제였을까, 두통이 조금 약해진 것도 같았다.     


더위가 온다. 공황도 온다. 그러나 난 내 안의 힘을 믿어본다. 뭐... 지금처럼 예기불안 오면 비상약 먹으면 되고, 발작 오면 응급실 다녀오면 되지 뭐... 공황이 떨어져 나가면 좋겠지만  공황과 사는 내 삶에 익숙해져 안온한 일상이 되기를 오늘도 바래어 본다. 오늘은 내가 방심했다.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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