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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리 감성돈 May 17. 2020

공황이 준 선물, 아버지의 밥상

공황이 준 선물, 아버지의 밥상  

  

올해로써 7년차 공황장애 환자이다. 공황장애를 가지고 혼자 살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삶을 산지 이제 1~2년 되었다. 2016년 공황장애로 인해 발작 증상이 오면서 병원에 4번 정도 입원하게 되었다. 우울증도 심해졌고, 공황으로 인하여 살아야한다는 생각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 때이다. 병원에서 퇴원을 했지만 누군가의 케어가 필요했다. 한부모 가정이라 내게는 모친이 없고, 아버지는 같이 살아본 적이 없다. 따로 살며 직장생활을 하신다.


그런 아버지께서 딸내미의 공황장애로 인하여 일을 그만두고 2년 정도 함께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딸내미랑 같이 살아본 적이 없어서 우리 같이 노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하늘이 주신 시간인 것 같다. 그렇게 2016년 내 나이 32살부터 2018년까지 함께 살았다. 그때 나는 혼자 밥을 차려먹기 힘들 정도로 몸이 안 좋았고, 삼시세끼 매일 아버지는 딸내미의 밥상을 차려주셨다.     


지금은 지난 이야기이기에 슬픔보다는 공황이 준 선물, 아버지와의 시간, 아버지의 밥상으로 부르며 이야기 하고 싶다. 밥과 국을 좋아하는 딸내미로 인하여 아버지는 매 끼니 따뜻한 밥과 뜨끈한 국을 차려 주셨다. 그런 이야기다.   

  

공황장애로 인하여 몸이 안 좋아지자, 냉장고 문을 열 힘이 없었다. 결국 밥상을 차릴 때 반찬 한 가지도 내 힘으로 꺼내어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수저, 젓가락만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내 몫으로 주신 물이 든 컵도 두 손으로 감싸고 간신히 들고 마셨다. 숟가락을 든 손을 벌벌 떨며 국물을 흘리지 않고 먹으려고 애썼다. 아버지와 내가 함께 살게 되면서 TV를 보며 좋아하는 프로가 있었다. 바로 한국인의 밥상이다. 최불암 할아버지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연이 있는 밥상을 설명하고, 마지막에 최백호씨의 음악이 흘러 나오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에 못지 않게 난 내 아버지의 밥상 또한 사랑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고기를 좋아하는 나로 인해 매일 같이 식사를 마치고 나서 고기를 양념에 재우기 바빴다. 그리고 건강한 밥상을 차려주시고자 싱싱한 채소를 매번 씻어 주었으며, 장아찌 몇 개, 계란후라이 아버지것, 내 것 두 개. 김도 두 개 꺼내어 놓았다. 다른 집처럼 반찬을 작은 그릇에 조금씩 올려 놓고 그런 모습은 없었지만, 매일 같이 냉장고에 있는 반찬들을 모두 꺼내서 차려주셨다. 내가 먹는 음식을 찬찬히 바라보시다가 잘 먹는 반찬은 더 구입해두시거나, 만들어주셨다. 아버지께서 해주신 소고기 무국과 미역국이 참으로 맛났다. 언제부터 끓기 시작했는지 모르는 국은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인덕션에서 냄비 가득 끓고 있었다. 밥솥에서 밥이 되었다는 소리, 그리고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와 은은하게 퍼지는 음식의 향이 퍼지면 그 소리와 냄새를 맡고 일어났다. 아버지와 33년 간 못 나눈 정을 아버지의 밥상을 통해 느꼈다.


 동네 김치 축제가 있거나, 먹거리 축제를 하면 아버지와 함께 산책할 겸 갔다. 그 당시 나는 지팡이를 짚고 조금씩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축제에 가면 나는 그저 풍경을 보고, 사람들을 보며 즐겼고, 아버지는 내일의 찬거리를 무엇으로 해야하나 하면서 서로 다른 시선으로 축제를 즐겼다. 다음 날의 찬거리를 얘기하며 아버지와 나는 같은 주제에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그 시간이 따사로웠다. 아버지도 나도 한식을 좋아해서 매번 밥상차림을 허투루 차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게 공황장애가 온 후 잘 먹고, 잘 쉬어야 낫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늘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주셨다. 조금씩 설거지도 도와드리고, 채소를 씻고, 계란후라이를 하는 등 늘 혼자 차리던 아버지의 밥상을 조금씩 도와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혼자 살던 분이 나와 함께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다도를 즐기시며 혼자 산책도 하시며, 아버지는 아버지만의 여유를 찾고자 노력하셨다. 지금은 아버지는 다시 일터로 가시고, 다시 따로 살게 되었다. 나 혼자만 있어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때가 온 것이다. 혼자 살며 TV로 한국인의 밥상을 보며 늘 아버지의 밥상이 떠오른다. 그리고 행복하다.


아버지와 나는 각자 가야할 길이 다르다. 각자의 길에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아버지와 함께한 그때를 떠올리며 행복에 젖어 아버지를 생각할 것이다. 공항장애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고, 또 앞으로도 살아가겠지만, 공황장애가 내게 준 선물은 아버지의 밥상인 듯 하다. 이제 혼자 밥 숟가락을 뜨지만, 그 한 숟가락의 힘에 모든 분들의 수고로움을 떠올려본다. “잘 먹겠습니다” 혼잣말로 얘기하며 나만의 밥숟가락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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