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수리 감성돈 Jan 02. 2021

귀마개 끼고 자는 밤


내가 사는 건물은 7층짜리, 1층은 가게, 2~4층은 원룸, 5~6층은 투룸, 거실, 7층은 건물주 분 사무실이다. 나는 5층에 살고 있고 투룸에 거실, 풀옵션, 혼자 살고 있다. 층간소음은 없으며, 윗집에 감사해하며, 3년 정도 살고 있다. 아니, 3개월 전까지는 그렇게 살았다.     


앞집에 남자 2명이 이사 왔다. 20대 후반으로 꽤나 젊어보였고, 이 근처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고 들었다. 대학교때 학과를 불문하고 수업을 마치면 동아리방으로 모여 드는 학생들처럼. 남자 2명이 사는 우리 앞집에 밤 10시가 넘으면 여러명의 사람들이 오고갔다. 새벽 4~5시까지 술 마시는 소음과 노래 부르는 소리, 쿵쾅거리는 소음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참고로 앞집과 우리집이 현관문을 동시에 열면 문이 닿는다. 그만큼 복도의 거리가 좁고, 방음이 잘 안되는 편이다. 이로인해 나의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했다.    


우리 옆집에 화가가 이사왔다. 거주하는 곳은 서울 잠실이고, 화가분 작업실로만 사용하려고 집을 얻었다고 한다. 여자분이다. 낮에 여러 사람들이 오고간다. 그건 상관없다. 생활소음은 살면서 당연한거니까. 내가 소음으로 인정하는 힘든 소리들은 주로 잠들 때 밤 12시 이후에 나는 소음들이다. 작업실은 사람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고, 주말이나 연말, 빨간 날이 낀 날은 어김없이 여러 사람들이 찾아와 술을 마시고 소음이 거세졌다. 


앞집도, 옆집도, 12시 넘어서 들리는 소리들에 건물주에게 얘기도 해봤는데,

이미 거주하던 사람들 입장에서 편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문제가 생기거나 소음이 들린다고 하면 앞집도, 옆집도 내쫓겠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그 말에 난 더 겁이 났다. 내가 뭐라고 내 한마디에 누군가 삶의 안식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건물주에게 말하기를 그만뒀다.     

그리고 얼마전에 우리 건물 말고, 잠실에 사는 다른 건물 건물주 분과 소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의 입장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조금씩 화내는 상태가 누그러지고, 내가 너무 예민했던 것은 아닐까. 한번 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어디 가게에서 음식도 못 먹고, 그나마 편안한 집에서 여럿이 모여 시간을 보내는게 당연한데... 내가 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의 모난 부분도 깎이고 깍여 동그랗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12월 31일, 약국에 가서 귀마개 2개를 샀다. 소란스러운 날에는 내 귀를 막고 잔다면 괜찮지 않을까. 1월 1일 밤. 귀마개의 성능을 알아볼 수 있는 날이 왔다. 앞집은 저녁부터 또 사람들이 오고가고 동네가 시골이라 치킨 밖에 주문이 안되는데 여러 군데 치킨집의 배달이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귀마개를 꼈다. 그리고... 모든 게 괜찮았다. 내 마음도 평화로워지고, 안온한 잠을 이루었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똘기 떵이 호치 새촘이 자축인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