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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Jul 31. 2019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보물 '직지'

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한국문화 찾기

‘주자인시(鑄字印施 )’.  『직지심체요절』 하권의 마지막 부분에 적혀 있는 말이다. 바로 한자어 ‘쇠 부어만들 주(鑄)’자를 통해 직지가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음을 알려주는 살아 있는 증거다.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 『직지』. 현재도 한국 불교에서 부처님의 깨우침을 가르치는 대표적 교재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책의 번역본들도 상당수 출간되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직지』가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되어 처음 세상에 나온 지 거의 600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책은 1972년 프랑스의 파리국립도서관에서 하권이 발견되기까지 기록과 복사본으로만 남아 있었다. 책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고 시대적으로 구텐베르크 활자보다 앞서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임이 밝혀지자 세계는 인쇄기술의 선진국으로 한국을 재평가하고 있다. 


이후 1972년 세계 도서의 해를 맞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전시에 출품하면서 세상에 존재를 알렸다.그리고 2001년 유네스코는 『직지』를 인류가 함께 보호해야 할 기록물, 즉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물 중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임을 공인한 것이다. 


세계기록유산, 직지


이 책이 지구 반대편 프랑스에서 발견되기까지 과정에는 한국의 아픈 역사가 함께한다. 구한말 나라가 여러 열강의 세력 다툼의 장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프랑스까지 흘러들어간 것이다. 

조선은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 이후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나라와 수교를 맺고 서구의 한반도 진입을 허용했다. 이때 수많은 한국의 유물들이 반출되었다. 『직지』 역시 그러한 운명을 맞이했다.


1900년경에 초대 프랑스 공사이었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는 두 권으로 알려진 책 가운데 하권을 프랑스로 가져갔다. 

그가 프랑스로 반출한 책의 표지에 ‘1377년’이란 년도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란 펜글씨가 남긴 것을 보면 책을 보는 시각이 남달랐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그의 아버지의 영향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당시 플랑시 공사의 아버지 ‘쟈크 플랑시’는 프랑스 신비주의 학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이 책을 1911년 경매를 통해 프랑스의 유명 수집가 ‘베베르’에게 넘기게 된다. 당시 돈으로 180프랑이었다. 베베르는 이 책을 평생 소장하다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52년에 프랑스국립도서관에 기증했다. 프랑스국립도서관 측도 이 책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이후 『직지』가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한 한국인 연구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단순히 오래된 유물로만 알았던 책이 세계 인쇄의 역사를 바꿔놓은 것도 놀랍지만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의 기술 수준이 이 정도라는 사실에 더 놀랐다. 


그런데 그들을 더욱더 충격에 빠뜨린 기록도 있다. 그것은 플랑시 공사가 한국에 부임하면서 통역사로 왔던 쿠랑이란 사람이 2년여를 한국에 체류하면서 쓴 책에 나와 있었다. 


『서울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책에 이어 출간한 『한국서지』라는 책이다. 여기에는 한국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을 만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이 책에서 『직지』보다 무려 145년이나 앞선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 존재했음을 밝히고 있다. 기록으로만 전해지는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이 그것이다. 한국의 금속활자에 대한 역사가 한 프랑스 언어학자에 의해 기록으로 정리되어 남겨진 것이다. 

이러한 기록이 의미하는 것은 유물의 제작연도와 희귀성의 차원을 뛰어넘는다. 문화 전반으로 시각을 넓힐 수 있는 다리가 될 수도 있다. 인쇄 기술은 단순히 책을 만드는 기술을 넘어 문화를 이어가게 만들고 확대하는 힘을 가졌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역사가 일본 식민지를 거치면서 한국에서 잊히거나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이다. 세계 문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과 발명품이 프랑스 고서 창고에 숨어 있거나 기록으로만 알려졌었던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배우게 되는 인류 역사의 교육과정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인류 역사를 바꾼 발명과 발견에 관한 이야기다. 이 교육과정에서 인류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것으로 꼽는 것이 종이와 인쇄기술이다. 

이들 두 가지는 인류 정신문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유럽 중심의 역사에서는 금속활자 인쇄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독일에서 인쇄한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를 가장 오랜 유산으로 이야기해왔다. 사실 한국의 『직지』 이후 조선초의 상당수의 인쇄물이 금속활자로 만들어졌음에도 유럽에서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구텐베르크 42행 성서

또한 유럽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일 때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의 문화가 갖는 가치는 거의 외면받아 왔다. 『직지』가 발견되고서도 한동안 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도 문화적인 우월의식 때문이다. 그들이 이렇게 인쇄술에서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를 고집한 것도 이런 요소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시대를 알려면 그 시대의 사상을 알아야 하고 그 사상은 기록으로 전해진다. 그 기록 유산은 인쇄를 통해 만들어진다.


정신문화의 중심, 인쇄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특권계층에 있는 지식인들에게만 글이 전파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인쇄술이 그러한 지식의 독점을 막고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마치 한국에서 한글이 한자를 대신한 것과 같다. 한국은 일부 지식인만이 어려운 한자를 독점해 일반인들은 지식에 접근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그런데 세종 이후 한글이 보급되면서 대중이 글로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을 얻게 된 것처럼 지식인들만이 소유하던 그 정보는 인쇄기술을 통해 대중화했다. 그리고 목판에 이은 금속활자의 기술은 한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기술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한국의 금속활자 기술에 대해 한국 내부에서부터 부정하는 기류가 일부 있었다. 

한국의 한 학자는 ‘직지심경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고 자랑하지만, 세계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기억한다. 그것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성경을 보통 사람들 손에 쥐여주는 정보의 대중화로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지심경이나 세종대왕의 한글 발명은 그런 혁명적 효과가 없었다. 즉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세계사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해 논란을 부른 적이 있다.


그의 말은 상당한 오류를 가지고 있다. 엄밀히 말해 유럽에서 ‘정보의 대중화’는 엄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단편적이고 직선적인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민혁명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성경의 대중화가 정보의 대중화로 보는 시각은 옳지 않다. 또한, 시민혁명과 연결하려는 시도 역시 억지스러운 면도 적지 않다. 수평적인 확산만이 가치 있다고 보는 편협한 생각에 빠진 것이다.


금속활자 기술은 한국 사회의 정신문화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왕으로부터 평민까지, 자손에서 자손으로 전달되는 수직적 관계가 한국 인쇄 기술의 역사적 가치다. 단순히 인쇄 결과물이 영향을 미친 사람의 숫자나 시대의 흐름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인 해석이다. 대중성의 측면만으로 모든 것을 말하려는 것은 자국의 문화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뿐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의 인쇄술은 한국의 문화사적인 측면과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그 어떤 것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 고려 불교의 문화와 조선 성리학의 사상적인 흐름은 인쇄술을 통해 발전해왔으며 한국의 정체성을 만드는데 이바지해왔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로 대표되는 인쇄문화는 한국 사람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문제를 대를 이어 제시했다. 과거 유럽에서 필사에 의존해 전해지던 자신들의 정체성을 한국은 일찌감치 인쇄라는 고급 기술을 통해 전했다. 이렇게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전달하는 데 있어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은 앞서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한국의 이런 전통의 역사적 의미는 주변 국가들과 비교해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전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알려진 가장 오래된 인쇄물은 일본의 ‘백만탑다라니경’이며, 인쇄연도가 기록된 유물로는 중국의 『진강보루오보루미징(금강반야바라밀경)』이었다. 이 인쇄물은 1908년 영국의 스타인(1882∼1943)경이 중국 둔황 석실에서 발견하여 대영박물관으로 가져간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인쇄물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보다 각각 19년과 118년 이후의 것들이다. 다시 말해 한국은 자신들의 고유한 사상과 문화를 그 어떤 나라들보다 먼저 남겨 왔고 이를 수직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결국 문화적 파급력을 이야기할 때 ‘중요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비교의 대상이나 방향성을 정확히 선택해야 한다. 수평적 전달과 수직적 전달 사이에서 각각의 의미가 존재한다. 또한 수평적 전달을 중시하더라도 문화권의 차이가 고려되어야 한다. 당시 유럽은 하나의 문화권을 지니고 있었지만, 한국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지고 발전해가고 있었다. 언어 역시 유럽과는 달리 한국은 독자적인 언어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독자적인 문화에서 발명된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유산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조그만 나라에서 만들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유산’이라는 잘못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의 인쇄기술은 삼국시대 목판인쇄를 포함해 종이 등 부수적인 유산들과 함께 소중한 자산이다. 그 자산은 혁명의 산물이다. 언어라는 제1의 혁명과 문자라는 제2의 혁명, 그리고 인쇄술이라는 제3의 혁명이 한국 문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어쩌면 컴퓨터와 IT라는 제4의 혁명이 한국에서 일어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혁명은 새로운 혁명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혁명의 결정체가 바로 『직지』다. 『직지』가 갖는 의미가 인쇄문화사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은 혁명을 이끌기 때문이다. 


그 혁명의 시작은 한국이 1200년대 초에 금속활자를 발명하면서부터이고, 이것을 실증적으로 증명해주는 가장 오래된 책이 『직지』다. 그것이 조선조에 와서 대대적을 꽃을 피우고 오늘날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자리 잡는데 있어 고려로부터 뿌려진 혁명의 씨앗이다. 


한국의 유전자 속 직지


인쇄기술이 중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한국으로 넘어와 절정을 이루었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이러한 한국의 기술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북송(北宋:960-1126년) 때 인물 필승(990-1051년)이 만들어 썼다는 찰흙활자인 ‘필승문자’를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본 『직지』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자 한국을 금속활자 발명국으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그들의 인쇄 역사를 연구하고 나선 것이다. 세계 4대 발명품이라는 종이, 화약, 나침반과 인쇄술의 원류라는 자부심이 있는 중국으로서는 여간 자존심 상하는 문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중국의 한 일간 신문에서는 “한국이 활자인쇄 발명권을 ‘약탈’해 중국 네티즌들이 분노의 반격을 하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비판에는 문제가 있다. 한국의 『직지』가 인쇄술 자체의 발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인쇄술의 최초 발명은 중국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인쇄술을 발전시켜 금속활자에 이르게 한 한국의 기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술의 가치는 내용과 함께 한국의 사상을 면면히 이어온 데 있다. 과거 ‘도올 김용옥’은 이러한 직지의 정신을 언급하기도 했다. 


“『직지』가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서가 아니라 내용 때문이다. 『직지』는 선불교의 핵심·요체이며, 그 메시지가 현대인인 우리에게도 무심, 즉 모든 유혹과 분열, 화쟁을 넘어선 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라는 도올의 말은 『직지』가 지닌 역사적인 가치뿐 아니라 문화사와 사상사적 측면에서 보고 있다.


『직지』를 바라보는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이런 최고의 유산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현실을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몸속 유전자가 되어 이어온 정신의 산물임을 알아야 한다. 실제 『직지』의 가치를 ‘가장 오래된’을 넘어 ‘가장 파급력 있는’ 문화 유산으로 승화하는 데 힘쓰고 있는 모습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개인에서부터 지자체까지 잃어버린 문화를 찾으려는 한국의 노력은 머지않아 결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결실은 ‘반크’가 이루어냈다.


반크의 노력으로 미국 유명 교육 사이트인 ‘어썸 스토리지(Awesome Stories)’에 직지 동영상과 직지를 소개하는 글이 등재된 것이다.

반크 홈페이지

어썸 스토리지는 미국에서 1999년에 설립된 사이트로 미국 초·중·고교, 대학교, 청소년, 교사, 도서관 사서, 교육 담당자들에게 창의적이고 수업과 학습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교육 자료들을 제공해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영상과 함께 ‘한국은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한 최초의 나라다. 한국은 고려 시대 1234년에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했으며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인쇄본은 『직지』다. 『직지』는 1455년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먼저인 1377년에 인쇄됐고 유네스코는 『직지』를 세계기록유산에 올렸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은 세계 속에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고 있다. 이에 걸맞은국가브랜드도 필요하다. 그동안 정부 차원에서 다이내믹 코리아, 프리미엄 코리아, 한 스타일-한류, 스파클링 코리아 등을 내세웠지만 말뿐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런 구호가 아닌 실질적인 콘텐츠와 한국의 핏속에 흐르는 정체성으로 무장해야 진정한 국가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다. 한국이 그동안 쌓아온 근면과 뛰어난 기술력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보여주는 콘텐츠야말로 진정한 한국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직지』는 한국의 핵심을 이야기하는 최고의 콘텐츠를 담고 있다.

‘『직지』의 나라, 금속활자의 나라, 그 정신이 살아 있는 나라’라는 더 큰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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