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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산 Jul 31. 2019

한국인만 모르는 한국의 보물 '한지'

고산/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의 한국문화 찾기

수도자들처럼 정갈한 옷을 입은 여든한 명의 신자.

그들은 두 손을 모으고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기도를 올리고 있다. 자세가 모두 다르고 표정도 모두 다르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는 신을 향한 경건함으로 가득하다.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도 그 경건함에 차분해진다. 한국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벽면에 있는 작품 ‘아멘’의 여든한 명의 모습이다. 

아멘! 이는 옛날 유다교의 회당에서 의식 중에 쓰던 말을 그대로 그리스도교에서 이어받은 것이다. ‘참으로’, ‘진실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빕니다.’의 의미를 지닌 말이다. 종교적인 엄숙함과 상징을 담고 있는 단어만큼이나 작품이 주는 엄숙함은 실로 대단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종교인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도 주목받고 있다. 세계 최대의 한지 조형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가로 16m, 세로 11m에 이르는 이 작품은 ‘캐스팅’이란 기법에 한지의 성질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리고 작품 앞쪽으로는 한지로 만들어진 ‘예수 십자가 고행상’이 매달려 있다. 이 역시 한지의 주재료인 닥나무가 주는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작가는 딱딱한 재료로 인해 차갑게 인식되던 조각 작품의 영역에 한지의 따뜻함과 푸근함을 입혔다. 이런 성미술품은 유례가 없는 것이다. 규모나 재료의 측면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을 많이 벗어나 있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떻게 해서 이런 대작을 만들면서 그 재료를 한지로 선택했을까? 


견오백 지천년


흔히 한지에 대해 습기에 약하고, 작은 힘에도 쉽게 찢어지는 재질로 생각한다. 하지만 천연재료에 장인의 손길을 거친 한지는 다르다. 그 보존성이나 가공 면에서 다른 어떤 종이보다 뛰어나다. 

‘견오백 지천년’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비단은 500년 가지만, 종이는 1,000년을 간다는 말이다. 유럽에서 산업혁명 이후 대량으로 생산되던 종이와는 내구성 면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종이들은 대부분 첨가제와 화학약품 처리로 인해 원재료의 힘을 잃기 때문이다.


이러한 처리가 없는 천연재료의 종이는 탁월한 보존성을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미술품 복원이나 중요한 문서에 대해서는 천연재료로 만들어진 종이를 사용한다. 그동안은 일본 닥나무로 만든 화지가 종이 유물이 찢어지는 등의 손상을 복원할 때 가장 좋은 재료로 인정받아 왔다. 그 덕에 세계 고미술품 복원 시장의 95%는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다. 


1966년 피렌체 대홍수를 계기로 사용하기 시작해 근 50년간 거의 모든 종이 유물의 복원에서 화지는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화지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유물 복원에 한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 한지가 사용된 것은 이탈리아인들이 소중히 여기는 문화재인 <카르툴라(Chartula)> 복원이었다. 이때부터 한지의 가능성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2017년, <교황 요한 23세 지구본> 복원에 한지가 쓰이면서 그 우수성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당시 교황의 지구본은 제작 연도가 1960년이라고만 알려진 지름 1.2m, 높이 1.8m, 둘레 4m의 거대한 크기였다. 그런데 이 지구본 복원에서 기존의 화지로 둥근 면을 처리할 수 없었다. 교황청은 새로운 종이를 찾아야만 했다. 

복원을 위한 첫 조건은 장력이 뛰어나야 했고, 지구본의 곡선 형태에서 주름이 잡히지 않아야 했다. 이 조건을 한지가 충족시켰다. 

교황 요한 23세의 지구본

종이 문화재의 복원에서 한지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이를 적극적으로 검토한 곳이 바로 프랑스의 자랑 ‘루브르 박물관’이다. 루브르는 자신들이 소장한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 2세 책상>을 복원하면서 한지를 이용했다.

그리고 유럽에서 시작된 문화재 복원의 ‘한류’ 바람은 미국으로까지 넘어갔다. 오늘날 미국 국회도서관, 하버드대 박물관에서 복원 처리에 이 한지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한지가 가진 보존의 탁월함은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봐도 알 수 있다. 불과 몇십 년 전에 만들어진 문서라도 누렇게 변하고 조각이 떨어져 나가는 데 반해 전통 한지로 만든 『조선왕조실록』은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처음 만들어질 때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강도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일반 종이보다 400배 가까이 뛰어나다. 

조선왕조실록_오대산사고본

한지와 한국의 기록문화


한국인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10개나 등록할 수 있었던 것도 어찌 보면 한지의 힘이다.

한국의 한지 기술은 종이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인정할 정도였다. 한지는 중국의 송나라에 처음 건너가면서부터 그 우수성을 이미 인정받고 있었다. 송나라 최고의 시인 소동파나 유명한 서화가인 황정견도 고려지, 즉 한지만을 고집했을 정도였다. 송나라뿐 아니라 금(金)나라의 황제인 ‘금장종’까지 한지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그는 푸른 물감을 들인 고려의 청자지(靑紫紙)에 글씨 쓰기를 고집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지에 대한 사랑은 송 이후 명, 청으로 국호가 바뀌어도 계속되었다. 명나라의 최고 서화가 ‘동기창’이 바로 이 한지를 가져다 썼다. 그의 대표작 <관산설제도(關山雪霽圖)>를 보면 한지의 뛰어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동기창 관산설제도關山雪霽圖

파란색 한지는 명사들이 서화용으로 썼을 뿐만 아니라 황실의 역사책을 편찬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는데, 명나라 『원사(元史)』의 책 표지를 이 종이로 만들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청나라의 경우 황제가 사는 자금성에도 한지가 쓰였다. 한국 사람들이 여행하면서 반드시 들른다는 이화원, 원명원 등의 별궁의 벽지와 창호는 바로 한지다. 여기에 쓰인 한지가 수백 년의 역사와 함께한 것은 이제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한지의 보존성의 극치를 보려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두루마리는 1,300여 년 전에 인쇄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세계는 이러한 유물을 보면서 한국의 한지가 갖는 그 보존성과 유연함, 강도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 그 오랜 세월을 버텨온 한지의 힘이 오늘날에 와서 크게 약화하였다.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것은 관심도일 것이다. 전통 한지장인이 사라지고, 그 기술의 전수도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의 경우 자신들의 화지에 대한 자부심이 지금도 강하고 무엇보다 이들 장인에 대한 처우부터가 다르다. 그들은 장인을 문화재로 지정해 자금을 비롯한 모든 것을 지원한다. 이런 문화재 정책은 장인들에게 ‘화지 장인’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을 심어준다. 또한, 그들이 값싼 수입지가 밀려와 위태로울 때도 꾸준히 연구하고 새로운 종이를 개발해냈다. 고급 인테리어용 화지가 바로 그러한 결과물이다. 값싼 중국과 동남아산 수입지에 대항해 고급화하고 장인마다의 특색을 살린 화지는 나름의 독립적인 시장을 만들어냈다.

세상에 단 한 장 밖에 만들 수 없다는 사람의 손으로 그린 화지

그들은 또한 미래 시장까지 내다보며 다양한 대회와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화지로 유명한 ‘에치젠 마을’의 경우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판매와 체험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도록 해서 화지와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마을에 있는 박물관에서는 화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중심에 어떤 장인이 있었는가를 알려준다.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미래를 위한 준비는 개인이 아닌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수십 개의 박물관과 체험관을 세우고 축제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그들의 종이 ‘화지’를 알린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으로 그들 전통종이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화지가 생활 속으로 들어오는 효과를 낳았다. 한국에서 한지장인이 천대받아온 역사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중국도 국가 차원에서 이러한 지원이 이루어지는 나라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종이는 ‘선지’다. 이들 선지 공장은 국가에서 지원하거나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며 철저한 품질 관리를 통해 그들 종이의 질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원료 만드는 법 등을 철저히 국가 기밀로 유지하고 관리한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세계의 서화지 시장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한지문화, 생할로 들어와야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가? 세계 최고의 종이 ‘한지’를 만들던 나라에서 그 명맥을 잇기조차 쉽지 않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해도 후계자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져 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한지 관련 행사도 많아지고 있지만 그런 노력이 아직은 대중의 관심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한지로 만든 제품들만을 접할 뿐 한지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한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지는 않는다. 생활 속 한지 문화가 없다는 것이다. 


한지로 만든 의상을 입고 패션쇼를 열거나 한지를 이용한 공산품 전시, 한지 축제 등은 화려함만을 보여주고 있다. 정작 중요한 장인은 그곳에 없다. 눈요기나 보여주기에 치중하다 보니 한지를 만드는 장인들에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전주한지 국제 패션쇼

한지를 한국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한브랜드’ 사업도 한지의 산업화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이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한지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들은 사업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러한 보여주기 방식의 한지 사업에서 주인이 초청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이다.

한국에서 생활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한지가 이런 눈요기 행사를 통해 확산할지는 의문이다. 생활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은 멀리 있지 않다. 자신들의 것에 대한 신뢰 부족이 가장 큰 문제다. 


중국의 자금성을 포함한 별궁은 지금까지도 한지로 창호가 되어 있지만, 한국에서는 당장 경복궁만 해도 그렇지 않다. 경복궁의 중심 건물인 근정전의 창호는 한지가 아닌 공장에서 제작된 비닐코팅지다. 비바람에 견디기 위해서라는 변명은 구차할 뿐이다. 자금성의 한지는 더 오랜 세월을 견뎌오지 않았던가? 대부분 사찰에서도 한지 대신 값싼 가공용지를 사용한다. 한지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한국에서 한지를 못 미더워하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은 한국의 옛 문화유산에서 한국의 멋을 느끼고 싶어 한다. 한옥의 창호로 스며드는 따사로운 햇살을 느끼고 싶고 거기서 한국을 발견하길 원한다. 

한국의 한지는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을 들여보내고, 겨울이면 서릿발 같은 차가운 바람을 막아준다고 한다. 

한국의 그 시원한 바람에 취해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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